2026년의 첫 달이 지나갔다.
새로운 세기를 향한 기대로 가득했던 젊은 날의 희망과는 달리, 우리가 마주한 21세기의 첫 4분의 1 지점은 절망과 미래에 대한 어두운 회의로 점철되어 있다.
올 해 들어 지구촌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공포스럽기 그지없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종전의 기미 없이 인간의 생명을 갈아 넣는 소모전으로 굳어졌고, 평화 정착의 허울을 쓴 가자지구와 서안지역에서는 여전히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향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폭력의 파열음이 들려오고 있다.
미국의 비호 아래 벌어지는 시리아 정권의 공격은 쿠르드인들의 삶을 짓밟고 있으며, 경제적 정의와 민주화를 갈망했던 이란 민중의 저항은 외세의 개입과 권위주의 신정체제의 학살 아래 수만 명의 희생을 뒤로한 채 좌절되고 있다. 강대국들의 자원 전쟁 속에 놓인 그린란드 원주민들의 운명은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 또한 목격하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 비극들이 개별적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아시아의 중국과 일본은 태평양 전쟁 이후 가장 극심한 대립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유럽 전체가 러시아를 겨냥하여 군사무장과 징병에 속도를 높이며 무력 충돌의 위험이 커져가고 있다.
발칸 반도 및 중동과 아프리카 곳곳에서의 내전은 예견되거나 이미 격화되고 있다. 이란과 미국, 이스라엘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러시아와 중국의 개입이라는 시나리오와 맞물리며 전 세계를 전쟁의 문턱으로 밀어 넣고 있다. 미국의 일극 체제가 저물고 다극 체제로 이행하는 이 격변의 시대에 세계 정치는 방향타를 잃은 채 표류 중이다.
미국 내부의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고 할 수 있다. 백인 민족주의를 앞세운 포퓰리즘 세력의 폭주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그러나 이를 막아내야 할 기존의 정치권과 진보 세력은 무능과 무력함으로 일관하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는 실종되었고 그 자리를 메운 것은 일방적인 독단과 분열이다. 사실상의 ‘내전’ 단계에 진입한 미국에서 미래에 대한 낙관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이 어두운 터널의 끝에서 우리는 무엇을 붙잡아야 할까? 거대 담론과 권력의 정치가 우리를 배신할 때,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결국 ‘개인’이라고 생각한다. 무력감 속에 파편화된 우리 개개인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손을 맞잡는 ‘적극적인 연대’만이 이 어지러운 공포의 시대를 버텨낼 유일한 출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비록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 긴 밤일지라도, 우리는 연대의 손길을 더욱 굳건히 쥐어야 한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고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그 작고도 강한 연결만이, 우리가 잃어버린 희망을 되찾고 우리가 살아야할 이 세계의 민주주의를, 경제적 정의를, 우리 스스로의 인간다움을 복원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아직 남아 있는 열한달의 2026년을 연대의 따뜻함으로 채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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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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