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집에 진돗개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전남 강진 군청의 내무과장을 거쳐 진도 군수로 부임한 문동호 씨가 선친께 선사한 것으로 이 당시 진돗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돼서 보호를 받고 있어 진도 밖으로의 반출은 엄격한 제한을 받고 있었다.
진돗개는 체구는 작은 편이였으나 잘 균형이 잡혀 있었고 양쪽 귀가 쫑긋하게 하늘을 찌르고 있는 것이 그 특징이었다.
이 당시 개는 천대를 받아 음식찌꺼기, 인체의 배설물 등을 먹여왔으나 진돗개는 일절 입도 대지 않았다. 집에서 진돗개의 음식물을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따로 장만하였다.
집에서 기른 진돗개는 색깔이 노래서 ‘노랭이’라 이름지어 주었다. 노랭이는 매일 아침마다 밤사이에 잡은 쥐들을 대여섯 마리 뜰에 늘어놓았다. 잘했다는 칭찬을 받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노랭이를 칭찬한 후에 쥐들을 흙 속에 파묻어 버렸다.
뜰에 떨어진 벼이삭을 주어 먹으려 참새들이 몰려들었다. 노랭이는 짐짓 눈을 감고 있다 갑자기 달려들어 새들을 날린다. 그리고 날아가는 참새들을 앞발로 때려잡는 것을 재미로 삼고 있었다.
집에 와서 일을 도와주던 동네 부인네들이 옷 밑에 음식물을 감추어 갈려고 할 때 노랭이가 달려들어 짓는다. 그 부인은 질겁하여 집안을 돌아올 때는 그대로 방관하고 있다가 그 부인이 대문밖을 나가려 할 때 노랭이가 또 달려들어 짖어 댔다. 이런 식을 되풀이하다 부인네는 옷 밑의 음식물을 내놓고 그대로 대문을 나가면 그때는 노랭이는 그대로 짓지 않고 내 보낸다.
저의 선친께서 “노랭이는 공산주의자들 보다 낫다. 사유재산의 관념이 명확하다”고 칭찬하신 적이 있었다.
진돗개는 그 근원이 몽고에서 유래된다고 한다. 진돗개가 어떤 경위 경로를 거쳐 진도에 정착한 후에 주민들의 보호아래 종족의 순수성을 유지해 온 것이다.
진도는 우리나라 남쪽반도의 서남 끝에 자리잡고 있다. 해남과 사이에는 하루 한번씩 방향을 바꾸어 급류가 좁은 대안사이를 치닫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가능케 했던 급류를 갖춘 것이다.(지금은 진도와 해남 사이는 육교로 연결돼 있다)
진도는 소치, 미산, 남농으로 대를 이어 받은 예향으로 이름 높고 ‘진도 아리랑’으로 민속의 예술성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서울에 유행하는 노래가 있다 “3번아 잘 있거라. 6번은 간다” 늙은 아버지가 아들집에 잠깐 머무른 사이에 관찰한 결과 아들집에는 자연히 순번이 매겨진 것을 발견하였다. 손자들이 1번이고 며느리가 2번이고 아들이 3번이고 ‘개’가 4번이고 가정부가 5번이고 늙은 아버지는 6번이어서 ‘개’의 4번보다 격하되어 있음을 발견하다. 한국에서 이렇게 개의 지위가 격상되어서 서울시 그리고 주변 신도시의 주변에는 부유한 주인들과 더불어 이들 개가 의기양양 거리를 좁다하고 활보하고 있다. 미국의 애견가들도 그들의 개들로 하여금 각종 기능을 발휘케 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어디서나 진돗개에 비견할 개를 나는 찾아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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