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주 어머니, 구정인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한국에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미국 사람이 한국말로 유창하게, 이런 인사를 찾아서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으세요?
얼마 전까지 가까이서 살던 소연이는 우리 딸과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명문대 코넬에서 남편인 데이빗을 만났다고 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의사인 데이빗은 보스턴의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라났고, 그래서 그들은 부모님들의 반대로 정말 힘든 결혼을 했다.
사위 데이빗은 품성이 착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수시로 눈에 띄었다. 데이빗은 영어가 약간 서툰 장인 장모를 위해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1년 넘게 한국대사관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요즘은 시카고로 이사가서 사는 그들. 많은 한국음식 뿐 아니라 유난히 떡을 좋아하는 데이빗이 하루는 운전을 하고 가다 ‘떡’이라는 간판을 보고 서슴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아주머니, 저 떡 주세요.” 어려 보이고 예쁘장한 노랑머리의 미국 사람이 의젓이 한국말로 떡을 달라니 너무 놀라서 아주머니는 얼떨결에 “무슨 떡이요?”라고 했고 떡을 가리키며 “여기 인절미요”하는 대답에 너무 놀라서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더라고 했다.
잠시 후 아주머니는 “한국말을 몇 마디씩 배워 하는 사람은 보았어도 총각 같이 잘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하시면서 너무 기분이 좋아서 오늘 돈 벌지 않아도 되니 필요한 떡은 모두 돈 내지 말고 가져가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안 돼요. 돈을 꼭 내야 합니다”고 했더니 그럼 1불만 내고 필요한 것 전부 가져가라고 하면서 “아이구 이뻐라, 아이구 이뻐라”를 되뇌이면서 어디서 그렇게 한국말을 배웠느냐고 물었다.
“우리 장인 장모님과 한국말로 잘 얘기할 수 있기 위해 제가 한국말을 공부했습니다”라는 말을 듣고는 가까이 다가와 끌어안고 등을 두드리면서 감격하더라는 얘기였다. 떡을 사고 물론 덤으로 수북히 들고 돌아서는데 아주머니는 처음으로 영어로 “땡큐, 땡큐”를 외치시면서 눈물이 글썽해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몇 마디 그와 나눈 대화들이 아주머니를 행복하게 해드린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좋은 집안에서 미술을 전공한 어머니 밑에서 착하게 자란 그의 성품이 돋보이고, 한국 사람을 무척 좋아하는 그. 하루종일 서서 일하는 장모의 아픈 발바닥을 눌러주는 사위. 멀리 있어도 크리스마스 카드에 여기서 태어난 딸은 영어로 쓰는데 한글로 단정히 ‘어머님, 아버님’으로 쓰는 그. 약간 서툰 영어로 장모가 “데이브, 저기...” 하면서 시작하면 그는 한국말로 “어머니, 한국말로 편하게 얘기하세요”라고 한단다.
장모 생각에는 그가 전생에 자기 동네에서 살던 한국사람인 것 같다고 얘기한다. 그가 한국말로 가끔씩 “우리 한국사람들은 말입니다...”라고 말할 때면 더욱 그렇단다.
새해를 맞아 가까이 사는 소연 엄마는 오늘도 사위가 너무 기특하다고 얘기하며 행복해 하고, 나는 주위에 그들이 있어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하루가 행복해진다.
자주 장인 장모에게 전화도 하고, 찾아오는 데이빗을 보며 누가 미국 사위가 한국 사위보다 못하다고 하겠는가. 새해를 맞아 그들의 가정에 행운이 듬뿍 쏟아지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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