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노벨위원회가 이란 민권변호사 시린 에바디를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한 데는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보다 억압적 정권을 변화하는 데는 에바디의 민권운동이 더 효과적이라는 점이 함축돼 있다.
지난해 지미 카터 전 대통령에게 평화상을 수상할 때도 노벨위원회는 그의 지칠 줄 모르는 평화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는 비평화적인 방법으로 평화를 가져오려는 부시 대통령에 대한 일침이기도 하다. 진정한 평화와 변화는 내적인 변화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에바디는 투옥되고 살해 위협을 받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여권신장을 위해 투쟁해 왔고 노벨위원회는 그녀를 ‘용기 있는 사람’이며 그녀와 같은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추켜세웠다. 그녀는 외세에 의한 변화에 반대했고 변화는 이란 국민들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과연 노벨위원회의 생각이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의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노벨상을 주었지만 북한의 고집으로 남북관계는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고 북한 핵 개발로 시끄럽기가 그지없다. 또 아웅산 수키 여사에 1991년 노벨 평화상을 수여했지만 과연 미얀마에 민주화가 왔는지 의심스럽다. 아직도 그녀의 가택연금 문제가 군부 집권세력과 별다른 성과를 이뤄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란에서도 에바디와 같은 용감한 시민들과 이들보다는 덜 용감하지만 사회개혁에 동조하는 국민들이 합세해야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작은 변화는 가능하겠지만 이란 내 개혁운동이 정치개혁을 수반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변화를 수용할 것 같은 발언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실권자인 성직자들의 마음은 쉽사리 열리지 않고 있다. 1979년 회교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성직자들을 몰아내려면 수많은 군중들이 죽을 각오로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를 벌여야 할 것이다. 이들이 외부세계의 도움을 요청할 때 이에 등을 돌려야 하는가. 몇 년을 더 기다린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지금 이란의 개혁운동가들을 지지하고 지원해야 한다.
데이빗 이그내시우스/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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