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년전 6월9일 저 역시 하와이에 첫 발을 디뎠어요”
“한국일보 창간 40주년 기념일과 제가 하와이에 처음 이민 온 날짜가 공교롭게 겹쳐 정말 신기하고 감회가 새로웠어요. 사진신부로 하와이로 건너 왔던 고모님의 초청으로 저의 가족이 이곳 하와이에서 제2의 삶을 시작한지 올해로 꼭 40년이 되네요”
하와이 한인 이민사의 한 장을 차지하는 사진신부 후손으로 하와이로 건너 온 지나 김(사진) 하와이 한인상공회의소 회장도 6월9일로 이민 40년을 맞았다.
12살 때 부모님의 손을 잡고 고향인 부산을 떠나 하와이로 이민 온 김 회장은 지난 30여년간 그야말로 하와이 주민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직장생활하며 개인적으로는 ‘미세스 나카무라’로 남편과 1남1녀의 자녀들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2003년 이민100주년기념사업을 시작으로 한-하와이 교류가 늘고 한류드라마 열기마저 높아지며 ‘미세스 나카무라’에 대한 사회와 가정에서의 기대 역할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지나 나카무라’가 아닌 사진신부 한인 이민후손으로서의 새로운 역할이 부여되기 시작한 것인데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으며 한인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에 눈 뜨기 시작했다. “2003년이후 매년 개최되는 코리언 페스티벌 축제준비위원과 한인상공회의소 회장, 민주평통 위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며 한국과 한인커뮤니티와 점차 많은 관계를 맺기 시작하며 커뮤니티 신문 특히 한국일보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졌다”는 김 회장은 “한국일보의 지난 40년간의 동포언론으로서의 숨은 노력과 역할, 김창원 회장이 솔선수범 앞장 선 이민100주년기념사업의 성공적인 개최가 있었기에 자신과 같은 이민 1.5세들이 뒤늦게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되고 한인사회 그리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발전에 힘을 보탤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다”고 단언한다.
40년간 하와이 한인사회의 발전은 김 회장이 27년간 한 우물을 판 뱅크 오브 하와이에의 김 회장 입지를 넓히는데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김 회장의 자녀들도 뒤늦게 한국말을 배우는 등 한국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대물림을 하고 있다는 것.
“사진신부 이민후손으로서 앞으로도 나름대로 이민200년 역사 만들기에 작은 힘을 보태고 싶다”는 김회장은 그래서 올해오 8회째를 맞는 코리언 페스티벌을 한국문화를 널리 알리는 하와이 유명축제로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능력있는 후배들을 발굴하고 양성하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밝힌다. 아울러 “그 일에 한국일보도 적극 동참해 줄 것이란 믿음이 있다”며 커뮤니티 신문으로서의 역할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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