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프로스트가 1939년 매입했던 버몬트주 립턴에 소재한 농가 ‘호머 노블 팜’의 눈 내린 정경. 프로스트의 아름다운 시들이 태어난 이 평화로운 숲 속의 고요한 농가가 청소년들에 의해 술과 마약과 오물로 더렵혀지는 등 마구 훼손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노란 숲 속엔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로 시작되는 ‘가지 않은 길’이란 시로 한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로버트 프로스트(1875-1963)는 소박한 자연생활에서 얻은 깨달음을 아름다운 언어로 옮긴, 미국 현대시에서 가장 순수하고 고전적인 시인으로 꼽힌다. 그의 또 다른 애송시 ‘눈 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의 정경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듯한 버몬트주에 위치한 그의 농가가 최근 한 겨울밤 지각없는 청소년들에 의해 마구 훼손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고교생 30여명 몰래 침입해 한밤중에 난장판 파티
정신적 유산 짓밟은 몰지각에 주민들 분노와 개탄
프로스트가 버몬트 주 립턴 마을 인적 드문 숲 속의 농가를 사들인 것은 1939년이었다. 하버드대 교수로 4번이나 퓰리처상을 수상한 그는 1963년 88세로 사망할 때까지 여름과 가을을 이곳에서 지냈다. 키 큰 자작나무와 은행나무에 둘러싸인 이농가 안팎에는 미국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시인 중 한명인 그가, 사색하며 시를 쓰고, 지인들과 끝없이 대화를 나누었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농가로 가는 눈 덮인 길은 ‘프로스트 로드’로 명명되었으며 집 앞에 세워진 커다란 푸른 사인판엔 ‘호머 노블 팜’이라는 이름의 이농가가 지닌 역사적 의미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현재는 인근 미들버리 칼리지 소유로 아무도 살지 않는 이곳에 한 떼의 청소년들이 들이 닥친 것은 지난 12월말 한밤중이었다. 몇 시간이 지난 새벽, 이들이 떠나고 난 뒤, 이농가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순결한 문학정신의 고향이 참혹하게 유린당한 것이다.
술과 마약으로 어지러웠던 난장판 파티로 창문은 깨지고 스크린 도어는 찢어졌으며 의자는 부서져 벽난로의 장작으로 태워졌고 벽에 걸린 그림은 가래침덩어리로 얼룩져 있었다. 곳곳이 토사물과 소변, 맥주로 더럽혀졌고 서가의 책들엔 소화전에서 쏟아져 나온 먼지 가루가 쌓여 마치 노란 담요를 깔아놓은 듯 했다.
다음날 근처를 지나던 등산객이 미들버리 칼리지에 농가 문이 열려있다고 알려주면서 드러난 현장을 보며 주민들은 분노와 함께 개탄을 금치 못했다. 이곳에서 자란 청소년이면 모를 수가 없는 장소였다. 초중고 시절 한 두 번은 꼭 견학을 오는 곳이며 미들버리 인에 초상화까지 걸려있는 프로스트는 이 지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건의 전말은 단순했다. 미들버리 칼리지의 주방보조로 한때 일했던 17세 소년이 비어있는 이농가가 비밀파티 장소로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고 한 청년이 술은 자기가 제공하겠다고 나서자 ‘음모’가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다. 비어있는 농가에서 밤샘파티가 열린다더라, 하는 뉴스는 입에서 입으로, 셀폰의 문자 메시지를 통해 금새 마을 청소년 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캔 맥주 150개, 몇 병의 하드 리커, 거기에 마약까지 준비되었고 많은 고교생들이 포함된 30여명이 모여든 것이다.
경찰은 눈길에 미끄러진 듯 농가근처 길옆에 버려진 차의 주인을 추적하며 어렵지 않게 용의자들을 체포할 수 있었다. 그들이 끼친 농가의 피해는 돈으로 치면 약 1만달러 정도였지만 그보다 훨씬 큰 것은 정신적 유산에 대한 상실감이었다. 어른들의 질책과 설득에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비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일부는 전혀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황폐할 정도의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몇 명은 무단침입으로, 몇 명은 경범죄로 처벌되며 일단 사건은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취조를 담당했던 리 핫든 수사관은 한 아이는 경찰에서 찍힌 머그샷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도 되느냐고 묻더라며 도대체 이들 젊은이들은 생각은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개탄했다.
미들버리 칼리지의 영문학 교수 존 엘더가 이날 밤 사건의 긍적적 영향 한가지를 이렇게 예상했다. “프로스트에 대한 훼손이 프로스트를 기리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가능할 수도 있다. 미들버리 유니언고교 당국은 앞으로 금년 내내 로버트 프로스트에 관한 수업이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눈 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
이 숲이 누구의 숲인지 알듯도 하여라.
하지만 그의 집이 마을에 있으니;
숲이 눈으로 쌓이는 것을 보며
내 여기 멈춘 것을 그는 알지 못하리.
내 작은 말은 틀림없이 이상하게 여기기라
한 해 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저녁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
가까이 농가도 없는 곳에 멈추는 것을.
말은 방울을 짤랑 흔든다
뭐가 잘못되었나 하고
오직 다른 소리라곤 느린 바람과
솜털같은 눈송이가 휩쓰는 소리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그러나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가야할 먼 길이 있다,
잠들기 전에 가야할 먼 길이 있다.
■이 시는 프로스트가 립턴의 농가를 구입하기 전 살았던 버몬트주의 샤프츠버리 소재 ‘스톤 하우스’ 시절인 1920년대에 쓴 작품이다. 프로스트의 아들이 물려받아 1,000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었던 스톤 하우스는 현재 뮤지엄으로 사용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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