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12일 국회가 대통령 탄핵소추를 의결함으로써 누가 승자(勝者)가 되었을까. 누가 패자이고, 누가 덫에 걸렸을까.
시간이 흐르면서 승패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통과 직후 여당 의원들은 통곡했고, 야당 의원들은 마침내 큰 일을 해치웠다는 안도감이 역력했다. 그러나 차츰 야당 쪽엔 패색이 깃들고, 여당 쪽에선 비수 같은 미소가 감지되고 있다.
탄핵 소추로 덫에 걸린 사람은 분명히 노무현 대통령이다. 그러나 그는 여유를 되찾았고, 야당들은 초조해 하고 있다. 여권은 결속하고, 야권은 분열하고 있다. 탄핵안 통과 후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지지도 변화 때문이다.
각 언론사들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열린우리당 지지도는 34~38%로 치솟고, 한나라당은 10~16%, 민주당은 6~7%로 떨어졌다. 야당들의 지지도를 합쳐도 열린우리당 지지도에 못 미친다. 총선을 앞두고 탄핵안을 발의하여 기세를 올리려던 야당들의 계산은 빗나가고 있다.
탄핵안 통과를 전후하여 실시했던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정당 지지도 이외에는 변화가 없었다. 탄핵에 대해서는 70% 정도가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30% 정도가 찬성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태도에 대해서는 70% 정도가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30% 정도는 잘못이 없다고 대답하고 있다. 탄핵 전이나 후나 차이가 없다.
노 대통령의 고정 지지자와 고정 반대자가 각각 30%정도 된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거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나머지 40%의 생각이 중요하다. 그들은 노 대통령의 태도에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탄핵은 안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들은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다. 노 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할 때는 반노와 합쳐 70%가 되고, 탄핵에 반대할 때는 친노와 합쳐 70%가 된다.
야당들은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여론을 무릅쓰고 탄핵을 강행하여 돌아올 수 없는 역사의 강을 건넜다. 그들은 총선을 앞둔 당리당략으로 야합하여 명분 없는 탄핵에 운명을 걸었다. 그리고 결국 노 대통령의 승부수에 말려들어가 노 대통령을 걸려던 덫에 자신들이 걸리고 말았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비수 같은 미소를 숨긴 채 전화위복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어떤 국면 전환이 온다 해도 그들이 ‘승자’가 될 수는 없다. 탄핵을 피하지 못했거나 피하지 않았거나 그것은 대통령으로서 용서 받기 어려운 중죄다. 대통령은 탄핵이 억울하다는 주장을 하기 전에 그 점을 확실하게 깨달아야 한다.
노 대통령은 탄핵안이 상정된 후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사태가 온 큰 이유는 자신이 ‘예상하지 못했던 대통령’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기득권 세력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사사건건 흔들다가 이제 당치 않은 이유로 탄핵까지 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 주장이 맞을까. 대통령이 주류 출신이 아니어서, 대학을 못나와서, 개혁으로 기득권 세력을 위협해서, 정치자금 수사로 정치인들을 압박해서, 대통령을 흔들어대는 것일까. 일부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피해의식으로 자신을 정당화해서는 안된다.
대통령이 얕보인 것은 그가 대학을 못 나왔기 때문이 아니라 대다수 국민과 상식이 통하지 않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핵심을 피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장황하게 변죽을 두드리는 그의 화법은 지난 1년간 국민을 지치게 했다. 그것은 ‘악몽’ 수준이었다. 그는 말할 때마다 국면을 악화시켰다.
지금은 모두가 패자다. 대통령은 물론 여당도 야당도 패자다. 덫에 걸린 것은 패자인 대통령과 국회를 가진 대한민국이다. 국가가 덫에 걸려 있는 위기에 국민이 분열해서는 안된다. 충격과 분노를 삭이고 온 국민이 숙연하게 헌재의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 민주주의의 원칙만이 오늘의 우리를 구할 수 있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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