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년시리즈5
▶ 스포츠 전면마비 부른 9·11 테러참사
숨가쁘게 달려 끝닿은 지점에 다다른 2001년. 지는 해와 더불어 끝내 사라지기를 바라는 지구촌 스포츠계의 송년 소망, 그 첫머리는 뭐니뭐니 해도 9·11 테러참사로부터 시작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단순히 스포츠계를 넘어 그 참사를 기획하고 실행하고 또 그 비극에서 즐거움을 더듬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지구촌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올해의 최고악몽일 수밖에 없지만.
’슬픈 이에게 위안을’ ‘처진 사람에겐 활력을’ 등등 스포츠가 담당해온, 앞으로도 변함없을 그 깨소금 역할 혹은 사명도 상상을 초월한 대참사 앞에선 무력하기 그지 없었다. 참사 당일부터 1주일가량 스포츠의 천국 아메리카에 스포츠는 없었다. 전면마비 전면동결.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도 "국민들의 사기진작을 위해서라도 중단은 안된다"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결단에 따라 메이저리그가 강행됐던 예를 굳이 들춰내지 않더라도 그건 창졸간에 들이닥친 스포츠판 빙하기였다. 메이저리그로만 보면 노사분규로 인한 중단 말고는 1차대전 끝물인 1918년 이후 처음 발생한 장기휴업이기도 했다.
NFL은 9월16일로 예정된 경기를 하느니 마느니 논란을 빚다 결국 손을 들면서 스케줄이 1주일씩 미뤄져 사상 처음으로 ‘2월의 수퍼보울’을 앞두게 됐고 MLS는 정규시즌을 조기 마감하고 1주일동안 움츠린 뒤 플레이오프에 들어가야 했다. 대학가나 초중고 무대를 가릴 것 도 없었고 심지어 동네스포츠에서 빚어지는 웃음소리·고함소리까지 들을 수 없었다.
대서양 건너 유럽에도 불똥이 튀어 축구 없이는 못사는 그곳에서 UEFA컵 챔피언스리그가 중단되는 사태가 빚어졌는가 하면 스코틀랜드의 축구명문 글래스고 레인저스는 카프카스 산맥의 이슬람공화국 다게스탄에서 가질 예정이던 클럽대항전 경기를 불안하다는 이유로 재판까지 벌여가며 보이콧하기도 했다. 미국 여자테니스 대표팀은 항공여행이 두렵다며 스페인에서 벌어질 예정이던 국가대항전 페드컵 결승전을 포기, 대회 3연패를 고스란히 넘겨줄 정도였고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 역시 수백만달러의 출전료를 외면하고 프랑스행 비행기에 오르지 않았다.
스포츠계로선 참사의 직접적인 희생자 가운데 스포츠계 사람들이 적었다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비극이 스포츠 아레나의 취침시간이나 다름없는 화요일 오전에 발생해 하필 그때 보스턴발 LA행 사고기에 탑승했다 변을 당한 LA 킹스의 스카웃 담당자 2명 등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희생자는 없었다.
그러나 9·11이 남긴 어두운 그림자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메이저리그가 노사간 단체협약 만료기한(10월31일 밤12시·동부시간)을 넘겨 11월의 월드시리즈를 보게 되는 등 밀린 스케줄 따위는 차라리 애교였다.
문제는 넥타이를 풀고 윗단추 몇개도 풀어놓고 누구나 맘편하게 즐겨야 할 스포츠현장의 풍경을 삼엄한 경비구역으로 변모시킨 것.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공포감을 심어주는 것 자체가 테러의 1차목표인 이상 ‘가만 둬도 저절로 흥분되는’ 스포츠현장을 테러분자들이 지나칠 리 없다는 끔찍한 예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스포츠마당으로의 즐거운 행차는 이미 국제공항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는 듯한 까탈스러운 나들이로 변했다. 내년 2월의 솔트레익시티 동계올림픽이나 5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한-일 월드컵과 같은 대규모 국제이벤트는 한편으론 명승부의 현장, 또 한편으론 테러와의 전쟁터같은 상반된 얼굴로 변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하던 전쟁도 멈추고 약속된 룰에 따라 힘과 기를 겨루며 평화의 축제로 승화시켰던 고대올림픽까지 떠올린다면 요즘의 스포츠무대 안팎 공기는 싸늘하다 못해 살벌하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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