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시간 배송을 ‘표준’으로 만든 아마존이 최근 ‘배송을 늦추면 7% 할인’이라는 선택지를 내놓았다. 속도의 상징이 스스로 속도를 낮추는 장면은 역설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냉정한 손익 계산에 가깝다. 배경에는 배송비 급등이 있다. UPS와 페덱스가 2020년 이후 기본요금을 매년 4.9~6.9%씩 올린 데다 부대 비용까지 인상하며 아마존도 방향을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존이 던진 메시지는 단순하다. 속도는 미덕이 아니라 상품이라는 것이다. 모든 고객을 동일한 속도로 실어 나르는 순간 기업은 비용 통제권을 잃는다. 반대로 급하지 않은 수요를 유도하면 물량이 분산되고, 인력·차량·창고의 가동 효율까지 높일 수 있다.
라스트마일 배송은 전체 물류비의 50% 이상을 차지할 만큼 비용이 가장 비싼 구간이다. 아마존은 ‘빠른 배송’을 접은 것이 아니라 ‘빠른 배송의 비용’을 드러내 고객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빠를수록 좋다”는 공식 대신 속도에 값을 매기는 시장으로 옮겨간 셈이다.
수익원 다각화에도 속도를 냈다. 헬스케어·식료품에 이어 온라인 자동차 판매까지 보폭을 넓혀 플랫폼 수수료와 광고 수익을 동시에 거두는 구조를 만들었다. 전략 선회는 실적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아마존 매출은 7170억 달러(약 1063조 5200억 원)를 기록해 월마트(7130억 달러)를 제치고 13년 만에 세계 최대 매출 기업에 등극했다.
반면 국내 유통업계는 부작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쿠팡조차 물류 투자 부담과 출혈 경쟁 압박 속에 와우멤버십 가격을 인상했고 지난 4분기 영업이익은 97% 급감했다. 샛별배송을 내세운 마켓컬리는 10년간 적자를 감내한 끝에 지난해에야 가까스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미국·이란 전쟁의 장기화로 배송비 인상 압력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이달 중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고 포장재값도 30~50% 급등했다. 아마존은 속도를 포기한 게 아니라 속도에 값을 매겨 수요를 분리했다. 국내 유통업계 역시 ‘속도 중독’에서 벗어나 속도와 비용을 함께 설계하는 단계로 넘어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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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진 서울경제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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