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주고…같이 울어주고…한인여성들의 고민 해결사
▶ 24년간 연구소 이끌며 폭력 피해여성에 숙식제공도
가정문제연구소는 40년간 한인 여성의 눈물을 닦아주며 성장했다. 연구소의 터줏대감 레지나 김 소장은 한인들에게 유명인물이다. 그의 다사다난한 삶을 들어본다.
▲역사 깊은 한인단체
레지나 김 가정문제연구소 소장은 첫인상이 확실하다. 서구적인 외모에 진한 화장, 옷차림도 세련되어 상담자들이 거부감을 느낄 만한데 일단 그가 입을 열면 튀어나오는 경상도 사투리와 정이 넘치는 입담이 저절로 마음을 열게 만든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가정문제연구소를 이끌고 오는 힘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인 정서에 남편한테 한 대 얻어맞았다고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 상담을 해오면 한번쯤 봐주자고 한다, 남편이 외도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일단 참아보자고 하여 설득시킨다. 그것이 나만이 상담 스타일이다.
전문적으로 상담을 공부하지 않았지만 이혼이라도 막자는 생각에서 해 온 오랜 경험이 산지식이 되었다.”레지나 김은 상담인이 울면 옆에 가서 등을 만져주며 ‘나도 그랬다’고 맞장구 쳐주고 눈가에 마스카라가 번져 검은 눈물이 흐르도록 같이 울다보면 무장해제 된 상담인들이 진심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그는 요즘 수년 전 발병한 암수술을 한 뒤 두어달에 한 번씩 건강 체크를 하러 간다. 매일 상담소에 나오지는 않지만 집에서도 여전히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전화를 열어놓는다. 급한 전화는 밤에도 받는데 요즘은 전화상담이 80%, 직접 면담이 20%다. “가끔 사람들이 나를 보면 그만 두셨죠 하고 묻는다. 그때마다 당황스럽고 설명하기가 어렵다. 아마 쉼터 후유증으로 인해 오해하는 것같다. 지금 많이 어렵지만 한 번도 문을 닫는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24년동안 어떻게 버텨왔는데....”
가정문제연구소(The Korean Family Counseling and Research Center) 40년 역사를 지닌 한인단체의 선구자격이고 해 온 일이 많아 손을 놓을 수가 없다고 한다. “1973년 동포사회에서 처음 생긴 상담기관으로 고 염진호 여사가 창립한 가정문제연구소는 현재까지 총 4만7,486건의 상담을 진행해왔다. 본인이 직접 상담한 건수가 2만2,000건이 넘고 나머지는 전문직 자원봉사자의 공이 컸다. 상담한 경험이 산 지식이다. 나는 숙련공이다.”깨질뻔한 가정이 레지나 김 소장으로 인해 화해가 되어 정상가정에서 자라게 된 자녀들이 그에게 보낸 댕큐 카드가 서랍 가득 수북하다.
▲매맞는 여성의 피난처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한인 이민이 급증하면서 한국어로 상담하는 곳이 1970년대 초까지 전무했다. 고 염진호(1919~1989) 여사가 1973년 자택에서 가정문제를 상담했다. 이때 레지나 김은 염진호 여사와 알게되었다.
“79년 이민와서 잭슨 하이츠의 식당 웨이트레스로 일했다. 달보고 매일 울던 시절이었다. 남편은 전화비스를 하면서 염선생님 사무실에 전화시설을 해주었는데 시설비 대신 연구소 이사로 등록한 인연으로 나도 연을 맺게 되었다.”
1983년 가정문제상담소 발기총회, 1984년 퀸즈 플러싱 사무실 개설, 1985년 자원봉사자 모임, 1987년 이사회 결성, 연방정부 비영리단체 승인, 가정문제연구소로 기관명이 변경됐다. 1989년 많은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도움을 준 염진호 여사가 사망했는데 한인사회 최초로 한인동포장으로 치러질 정도로 존경받은 인물이었다.
레지나 김은 이사장을 거쳐 염진호 여사 사후 소장으로서 일을 시작했다. 부부, 자녀, 노인, 가정폭력 피해여성 등 가정문제 상담과 정신건강 상담뿐만 아니라 가정폭력 피해자 임시숙식 제공을 하여 매맞는 여성의 피난처가 되었다.
1990년대~2000년대는 알콜 마약 도박중독 상담이, 2000년~2010년에는 인터넷 샤핑, 섹스, 절도 문제, 2012년에는 불황의 그늘로 사회복지 서비스 상담이 증가했고 2013년 상반기에는 청소년 상담, 이민법률 상담, 채팅으로 인한 가정파괴, 사기, 가출 등의 문제가 제기되었다고 한다.
▲일은 계속 된다
40년동안 가정문제연구소를 꾸려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역시 2005년~2009년 추진하던 쉼터 건립 문제다.
“뉴욕시로부터 쉼터 건립기금으로 108만7,000달러를 지원받기로 하고 한인사회로부터 12만9,300달러를 모금해 건물을 구입했다가 시정부의 미숙한 업무 처리로 무산되고 말았다. 수십만 달러의 손해를 감수하고 쉼터 마련의 꿈 접었다.”
현재 그때 구입한 건물을 빌려 각종 사회 복지서비스를 하고 있다. 레지나 김은 2000년 뉴욕시 공익옹호관 사회봉사상, 201년 뉴욕시 감사원장 봉사공로패, 2004년 연방상원 사회봉사상, 2006년 한국 정부의 국민훈장을 수상했다.
그의 본명은 장일화다. 중국에서 사업하던 아버지가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자 아들 셋에 하나인 딸이라고 일화(一花)라고 지어 보냈다. 1940년 경북 안동 출생인 그는 대구 청구대학을 나와 사진모델로 활동하며 일화인삼차 CF를 찍을 정도로 멋쟁이였다. 중년이 넘어서도 짧은 치마에 하이힐 신고 30년이상을 주말이면 남편을 파트너로 볼룸댄스를 즐겼다.
대학시절 연애한 김선교씨와 61년 결혼했는데 해외를 오가며 무역을 하던 남편은 62년 출장 선물로 아내에게 새빨간 매니큐어와 속눈썹을 선물할 정도로 개방적인 사람이다. 레지나 김은 야생마, 청개구리, 천상여자, 철없는 고집불통으로 불리는 자신의 별명을 사랑하며 다시 태어나도 똑같이 태어나고 싶다고 한다.
그의 손재주는 뉴요커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두 달에 한번은 손님을 초대했고 많은 이들이 그가 해주는 맛있는 밥을 먹었다. 200개의 화분을 키우며 상담하고 가는 이에게 화분을 나눠주었다. 기금모금 파티나 행사 초청장, 연말연시 카드에 그가 보내는 마른 단풍잎과 직접 짠 덧버선 하나 안받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정성을 다했다.
어느 해는 양로원에 보내는 덧버선 500켤레를 짜는데 앉아서도 짜고 누워서도 짜고 눈을 감고도 짜서 예정된 개수가 채워지자 몇날며칠을 드러누운 적도 있다. “지난 4년동안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2009년 1월 유방암이 발견되고 3월에 수술하고 항암치료를 9번 했다. 집에서는 보일러가 터지는 사고가 나면서 13만달러 손실이 났다. 그동안 흘린 눈물들이 약이 되고 재산이 되고 행복이 되었다. 요즘 롱아일랜드 노인아파트에서 지내는데 미국 와서 가장 마음이 편하다”
베이사이드 집이 없어지면서도 아직 연구소가 건재한 것은 낮에 전화회사 일을 하고 밤에는 연구소 복지 서비스 일을 해주는 남편이 두 몫을 해주기 때문이다. 지난 7년동안 기금모금을 안했어도 꾸준히 도와주는 개인의 기부금, 이사진, 영사관, 시 정부 그랜트 등으로 운영하며 30여명의 전문직 자원봉사자들이 무료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저 양반이 36년간 선교전화회사를 꾸려오면서 연구소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평생 아내가 하는 일을 무조건 지지하고 자랑스러워 해준다.”레지나 김은 3살 위인 남편에게 가끔 편지를 쓴다. ‘나는 당신 속을 썩이는 사람인 것 알아, 잘못해도 잘못했다는 말 안하는 것도 알지. 고집 센 나를 평생 치다꺼리 해준 남편 댕큐, 내가 제일 사랑한 사람은 당신이야‘하는 낯간지러운 편지도 쓴다.작년에 결혼 50주년을 맞은 부부는 1남1녀를 두었고 외손녀 둘, 외손자 둘을 두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후세대를 키우는 일은 생각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혼보다는 어떻게든 참고 살라’고 ‘한국식 정’에 호소하는 ‘레지나 김식’ 상담을 한다.
“하는 데까지 할 생각이다, 연구소가 결코 없어지는 일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미 그는 희생과 사명감 외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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