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에서 1891년 사이, 모네는 지베르니 지역의 ‘건초 더미’를 반복해서 그렸다. 1년이 지난 후에 동일한 장소에서 같은 소재를 그릴 정도로 집요했다. 여러 점을 그려도 구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연작에 대한 평단의 반응은 처음에는 냉소적이었다. 평론가들은 같은 풍경을 반복해서 그리는 모네의 의도를 미심쩍어했다. 모네가 내세우는 빠르고 임의적인 붓질은 조급한 완성을 위한 핑계일 뿐 실제로는 서두른 티가 역력한 함량 미달의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화상 폴 뒤랑뤼엘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모네가 그린 연작의 잠재적인 시장성을 일찍이 간파했다. 살롱 스타일을 대체할 상품에 목마른 시장에서 연작은 부르주아 수집가들을 설득할 수 있는 신선한 대안이 될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더 나아가 연작은 한 그림의 경제가치를 분할·확대해 시장을 키우는 묘수가 될 수도 있었다. 빛의 효과를 더 많은 캔버스에 나눠 그릴수록 시장가치도 그에 비례해 배가되는 ‘기적의 연금술’을 모네의 연작에서 봤던 것이다.
이 연금술은 1891년의 개인전을 통해 즉각 구현됐다. ‘건초 더미’ 연작 20점이 제각각 흩어져서는 안 될, ‘하나의 꾸러미’로 인식되도록 배치됐다. 작품들 전체를 하나의 ‘완결된 경험재’로 인식시킴으로써 그것들 가운데 어느 부분만 따로 떼어 구매하는 것을 경험의 결핍으로 느껴지도록 하는 전략이었다. 전시는 사흘 만에 전시 작품 모두가 팔릴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모네에게 부의 상승과 명성을 동시에 안겨준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흥미롭게도 시간을 쪼개는 모네의 연작 기법은 자본주의가 시간을 자산화하는 산업적 방식, 곧 시간을 균질한 단위로 나눠 임금과 생산성의 척도로 환산하는, 산업화 이후의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빛을 시간 단위로 쪼개고 그 각각을 캔버스에 나눠 담아 연작으로 묶어내는 방법은 성격이 다른 대상이나 서비스를 하나의 ‘투자 가능한 묶음’으로 만드는 일종의 금융 상품 마케팅과 많이 닮아 있다.
<심상용 / 서울대 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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