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직설화법으로 유명하다. 그의 자서전 ‘생각하는 기계’에도 거침없는 말투 탓에 주변과 불화를 빚었던 일화가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그 에두름 없는 말이 증시에서는 ‘재료’가 된다. 그가 툭 던진 한마디에 특정 종목은 순식간에 상한가로 직행한다.
■최근 양자 컴퓨터 테마의 광풍만 봐도 그렇다. 젠슨 황이 이달 14일 “인공지능(AI) 발전의 열쇠는 양자 컴퓨팅”이라고 운을 떼자마자 관련주가 폭주했다. 코스닥에 상장된 관련주들은 너도나도 상한가 랠리를 펼쳤다. 며칠 전만 해도 주목받지 못한 종목들이 세상을 바꿀 혁명주로 돌변했다. 젠슨 황의 말이라면 일단 믿고 보는 투자자의 심리가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다.
■한 달 전부터 불어닥친 광통신주 열풍도 마찬가지다. 젠슨 황이 지난달 16일 광통신을 “AI 데이터센터의 병목을 뚫을 핵심”이라고 말하자마자 시장은 불을 뿜었다. 대한광통신 같은 종목은 한 달 새 150% 이상 치솟았다. 지난해 10월에도 한국을 찾은 젠슨 황이 “로봇 기업과 협력하겠다”고 밝히자 코스닥에서는 이름에 ‘로봇’ 두 글자만 들어가도 주가가 들썩이는 집단 흥분 상태가 연출됐다.
■물론 그 기술들이 미래 핵심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문제는 증시의 ‘과잉 반응’이다. 실제 상용화까지 갈 길이 멀지만 투자자들의 ‘가즈아’ 분위기를 타고 주가는 고속 질주한다. ‘황의 낙점’을 받는 순간 폭등하지만 열풍이 지나면 급락하는 전형적인 테마주 수순이다. 빅테크 CEO의 한마디에 주식이 출렁이는 것은 미국 증시도 다르지 않지만 개인투자자 비중이 유독 높은 코스닥은 그 진폭이 훨씬 크다.
■기술 강국을 자부하는 우리나라에서 정작 투자자들이 해외 CEO의 입만 바라보는 풍경은 왠지 씁쓸하다. 그러나 이는 글로벌 시장을 주무르는 ‘K기술 리더’의 탄생을 향한 갈망이 투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전 세계 투자자들이 한국 경영자의 입을 주목하고 그의 한마디에 글로벌 증시가 출렁이는 날은 과연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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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일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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