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에 산후조리원이 처음 생긴 건 2000년 가을이었다. 한국에서 그 몇해 전부터 생겨 인기를 끌자 LA 한인타운에도 등장했다. 비용이 상당하기는 하지만 친정어머니나 달리 도움 줄 친척이 없는 이민가정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시설이라고 이해되었다.
그런데 조리원 안을 들여다보면 그림이 좀 달랐다. 남가주 산모들이 아니라 멀리 한국에서 온 산모들이 주 고객이었다. 자녀를 미국시민으로 만들기 위해 비행기 타고 날아와서 아기를 낳는 원정출산이 러시를 이루었다. 자녀가 미국 시민권자가 되면 나중에 유학도 쉽고 학비도 절감되며 병역문제도 해결된다며 출산 몇 달 전부터 미국에 와서 지내는 예비엄마들이 줄을 이었다. 내 한 몸 불편을 마다않는 이 지극한(?) 모성애의 목표는 출생 시민권(birthright citizenship). 일단 미국 영토 안에서 태어나면 부모의 국적과 상관없이 미국시민권이 주어지는 속지주의를 이용하려는 행렬이었다.
원정출산이 전 같지 않을 전망이다. 트럼프는 지난 1월 취임하자마자 출생 시민권에 제동을 거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에서 태어난다 하더라도 부모가 합법적 체류자격을 갖춘 경우에 한해 출생시민권을 갖게 하겠다는 의도이다. 불법이민을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가 출생시민권이라는 것이 트럼프의 오랜 주장이다. 이에 캘리포니아, 시애틀, 메릴랜드, 매사추세츠 등 22개 주와 워싱턴 DC는 위헌적이라고 반발, 소송을 제기했고, 연방법원이 시행금지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이를 전국으로 확대하려 하자 트럼프 행정부는 일부 연방판사들의 결정을 전국에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주 연방대법이 정부 측 손을 들어주면서 나머지 28개 주에서는 출생시민권 제한 행정명령이 시행을 앞두게 되었다.
미국은 만인평등을 기초로 세워진 나라가 아니다. 똑같이 미국 땅에서 태어나도 누구는 시민이고 누구는 시민이 될 수 없던 시대가 오래 지속되었다. 둘을 가른 것은 피부색. 흑인 노예와 그 후손은 시민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이 마침내 시민의 자격을 얻게 된 것은 남북전쟁 이후였다. 1865년 전쟁이 끝나면서 노예제를 금지하고(수정헌법 제 13조), 미국 땅에서 태어나면 누구나 시민이며(제 14조), 시민이면 인종 피부색과 무관하게 누구나 참정권을 갖는다(제 15조)는 일련의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헌법이 개정된다고 시민들의 의식이 바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특히 남부에서는 흑인들이 시민으로서 평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도록 온갖 꼼수들을 동원했다.
차별 받은 것이 흑인만인 것도 물론 아니다. 핑계만 있으면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것이 미국 내 모든 유색인종들의 삶이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1880년대 중국인 배척법. 중국 태생 이민자들은 시민권 취득을 원천봉쇄 당했다. 이때 한 인물이 불굴의 의지로 법적싸움을 벌이며 수정헌법 제 14조의 권리를 지켜냈다.
주인공은 샌프란시코 태생 중국계 2세 웡 킴 아크. 요리사였던 그는 가끔씩 중국을 단기방문하곤 했는데, 1890년 중국 방문 후 돌아오다 입국을 거부당했다. 조상이 중국인이면 미국 땅에서 추방될 수 있다는 중국인 배척법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소송을 제기했고 중국계 커뮤니티의 전폭적 지원 하에 승리를 이끌어냈다. 연방대법은 중국인 배척법이 수정헌법 제 14조를 넘어설 수 없다며 그의 출생시민권을 인정했다. 중국인 이민자는 절대 미국시민이 될 수 없다 하더라도 미국 땅에서 태어난 그들의 자녀는 출생시민권을 부여받는다는 것이었다. 영국, 독일 등 다른 지역 이민자 자녀들은 시민권을 받는데 중국계 이민자 자녀들에게만 금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단이었다. 그후 속지주의 출생시민권제는 120여년을 이어왔다. 인디언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세운 이 나라에서 과연 누가 시민이어야 하는가. 누가 시민의 자격을 갖는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1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세태 있는자 돈이든 권력이든 칼자루를 쥔자들이 휘두르는 무서운 무자비한 칼 요게 요즘 돌아가는미쿡 그리고 지구촌 앞으로 살아가기 디게 어려울 소수민들 없는자들...오~~~ 하늘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