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재난이 닥칠 때마다 이게 천재(天災)인가 인재(人災)인가를 더 따지지만, 사실 인간은 고래로부터 재앙이라는 건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닌 하늘의 작품이라고 믿었다. 이는 ‘인재’라는 말이 국어사전에도 없는 단어임이 증명하는 바다. 그래서 이 단어는 문명사회인 현대로 오면서 생긴 신조어인 셈이며, 이는 그만큼 인간 스스로가 재난을 키워버린 경우가 더 많았음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들의 역사에서도 좋은 왕일수록 국가적 재난을 잘 막아냈다. 당시의 재난은 주로 자연 아니면 전쟁과 관련되었는데, 그래도 자연 쪽이 전쟁 쪽보다는 훨씬 덜 인위적이다. 전쟁이야 더 잘 준비하면 되겠지만, 자연 쪽은 제 아무리 잘 준비해도 그들의 노력을 가볍게 뛰어넘는 정말 불가항력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시편 65편을 읽을 때마다 이 시 이면에 숨어있는 다윗의 심정을 헤아리려고 노력한다. 이 시가 언제 쓰였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내 추측으로는 그가 적어도 왕이 된 다음에 쓴 게 아닌가 싶다. 그는 왕이었기에 농경사회 속의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의 축복 아래서 풍요롭게 살기를 꿈꾸었던 것이다. 그의 이런 측면은 이 시 구구절절에서 베어난다. “땅을 돌 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왕의 역할은 백성들이 예기치 않은 자연적 재난으로 인해 고통당하지 않고 잘살도록 돕는 것임을, 그 어느 누구보다도 다윗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왕으로서 자연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이런 내용으로 절실히 기도했던 것이다. 그게 바로 시편 65편이다.
이 기도가 모든 재난의 기원이 하늘로부터임을 믿었던 고대 왕의 기도였다면, 지금의 정치가들의 재난 관련 기도는 어떤 걸까? 그들은 사실 너무 똑똑해졌다. 그들은 심지어 재난도 얼마든지 우리 능력으로 조절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아주 이상한 자신감에 충만해 있는 듯하다. 그 근거는 바로 그들의 ‘능력’이다. 지진을 예방할 수 있는 건축공학, 재난의 사후처리를 해낼 수 있는 기능적인 시스템, 또 그 모든 것들을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정치적 능력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거기에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는 걸 모르면 그것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되고 만다. 그럼 그 결정적인 결함은 무엇일까?만리장성과 관련된 일화다. 만리장성은 진시황제가 북방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약 4000킬로미터의 대 성벽이다. 그래서 이 성벽은 적어도 물리적으로는 당대의 군사력 기준으로 봤을 때 그 목적 달성은 충분히 이루어낼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의외의 곳에서 무너졌다. 바로 뇌물이었다. 성벽을 지키는 자들에게 적당한 분량의 뇌물을 얹어줌으로써 성벽 통과는 쉽게 이루어졌다. 결정적인 결함은 부패한 인간 자신이다.
금세기 들어 최고의 인재라고 평가될 수 있는 세월호 침몰 사건도 마찬가지다. 무려 300명이나 되는 인명이 바다에 수장되고 말았는데, 그 모든 것들의 원인은 인간들의 탐욕과 오판에 있었다. 이 일 후에 우리는 수많은 평가적 언어의 홍수 속에 싸여 있다. 사후약방문이지만 그들 안에 예리하고 정확한 진단들도 있다. 하지만 결국은 사람이다.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그 아무리 좋다는 시스템도 헛것이 된다. 분통을 터트리고, 지적도 하고, 후회도 해보지만, 결국은 시스템 속의 사람이 변해야 한다. 탐욕, 이기심, 분별력 부족, 헌신도 결여, 이런 것들의 주체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변치 않을 사람이 변화된 시스템을 계속 붙들고 있는 한 이런 일은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항상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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