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3 송년기획- 사양업종을 지키는 한인들
▶ 41년째 양복외길 재단사
‘모모 양복점’ 주인 김양득씨가 재단작업을 하고 있다.
패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비싸게 준 옷을 오래 입었지만, 지금은 저렴한 옷을 자주 번갈아 입는 추세다. 아무래도 이런 변화가 반갑지 않은 곳이 있다. 바로 수제 양복점이다.
퀸즈 플러싱에서 15년간 운영되던 ‘모모 양복점’(43-52 162st)을 2000년부터 인수해 운영해 오고 있는 김양득(59)씨.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41년간 줄곧 한우물만 파고 있으니 지금까지 인생의 3분의 2를 양복과 함께 살아온 셈이다.
그의 작업 공간 뒤편에 빽빽하게 꽂혀있는 손님들의 치수표가 긴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듯 했다. 김씨는 이중 한 치수표를 꺼내 보이며 “건축으로 치면 설계도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수년 전 만들어진 이 설계도가 제구실을 하려면 손님들의 체형 변화에 따라 더 커지거나 작아지는 등의 수정작업을 거쳐야만 한다. 그만큼 김씨의 설계도, 즉 치수표들은 시간에 민감하다.
한 때 수제 양복점들은 대형 기업이라고 불릴 만큼 잘 나갔다. 뉴욕 일원에만 해도 한인이 운영하는 수제 양복점만 10곳이 넘었다. 어느 집 장롱 속에나 ‘결혼’ 혹은 ‘첫 출근’ 등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 한 양복이 한두 벌쯤은 꼭 있던 때였다. 살면서 한 번 이상은 꼭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대기업들이 기성복을 내 놓으면서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됐다.
사람 손을 거쳐 정성스럽게 나올 법한 바느질 기술을 기계가 대체했고, 다양한 스타일과 색상이 쏟아져 나왔다. 대량 생산을 하는 이들과 가격 경쟁을 한다는 말 자체가 우스운 말이 돼 버렸다. 무엇보다 요즘 사람들은 양복 자체를 잘 입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수제 양복점은 하나같이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한 때 8명이나 되던 김씨 가게 직원들은 이제 겨우 3명만이 남았다. 뉴욕과 뉴저지는 물론 미 동부 지역에 남아있는 한인운영 수제 양복점은 김씨의 가게를 포함해 단 둘 뿐이다.
더 큰 문제는 그나마 남은 양복 기술자들 나이가 대부분 60대 혹은 70대 노인들이라는 점이다. 제대로 된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못한 탓이다. 어쨌건 김씨 역시 자신의 가게의 앞날을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 “양복 한 벌 만들려면 3년을 꼬박 배워야하는데, 어떤 젊은이가 불투명한 이 업종에 그만한 시간을 투자하겠어요?”
그래도 김씨에겐 아직 희망이 남아있다. 요즘 들어 한인이 아닌 타민족이 증가하고, 기존 기성복의 일률적이고 획일화된 디자인에 싫증을 느낀 젊은 층이 조금씩 수제 양복에 도전하고 있어서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언젠가 수제양복이 ‘부활’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김씨가 부산사투리가 섞인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양복 한 벌이 완성될 때마다 가슴 한켠을 가득 채우는 ‘자부심’이 있어요. 아무도 그 자부심에서 오는 뿌듯함을 모를 겁니다. 새 옷을 걸친 손님의 미소하나에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함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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