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낡은 책상 서랍에서/ 10년이나 지난 일기를 꺼내어 들었지/ 왜 그토록 많은 고민의 낱말들이/ 그 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지…"
잊고 있었던 나의 대한 기록들을 발견했다. 20년 쯤 전부터 써왔던 일기장들을 오랜만에 간 부모님 집에서 발견했다. 7년 전 미국으로 떠날 때 학창시절 성적표며, 앨범들, 일기장들을 이 곳 한국 부모님 집 서랍장에 넣어뒀던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니 한 번도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었다.
무언가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내 노트들. 작은 영어 단어장처럼 생긴 노트부터 여고생들이 좋아하던 알록달록 꽃무늬가 그려진 정사각형의 하드커버와 케이스까지 달린 바른손 노트, 대학 때 쓰던 한지 노트와 가나 아트에서 샀던 노트까지. 종류도 사이즈도 다양한 내 일기장은 스무 권쯤. 중고등학교 학창시절부터 유학을 가기 전까지의 10여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노트들.
위의 유행가 가사처럼 왜 그토록 고민의 낱말들이 중3 시절부터 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는지. 중3 일기장 처음 몇 장을 훑어보니 그 시절의 지나치게 진지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왠지 저 일기장들을 다 읽고 나면 지금의 내 고민들의 답도 보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라는 인간이 형성되어 왔던 과정, 나 개인의 역사이기도 할 테니 말이다.
나 스스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때론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생각과 판단을 하기도 하고,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아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도대체 현명한 선택이란 무엇인지를 몰라 갈팡질팡 할 때도 많다. 그럼에도 하루하루 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또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정신이 팔려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지금은 노트에 손으로 글씨 쓰는 일마저 흔치 않다. 컴퓨터를 켜고 워드로 작성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팔도 아프지 않으며 언제든 편집이 가능하다. 얼마나 편리해졌는가. 하지만 우리는 우리를 기록하는 일에 더 게을러지고, 친구들과 주고받던 편지는 이메일로 대체되었으나 그나마 드문 일이 되어버렸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온 길을 돌아보는 일은 좀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도록 하며, 또 나아가는 길의 방향을 다시 바로잡게 해 준다. 과거의 내 고민과 지금의 내 고민이 똑같다면 난 한치도 나아가지 못한 채 나이만 먹고 있는 것일 테고, 인간관계에서 어떤 고민이 반복된다면 그건 내 문제이지 상대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남을 탓하고 상황을 핑계 삼기 쉬운 사회다. 그만큼 복잡하게 얽혀 있고, 어떤 문제나 현상에 대한 원인을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특히 내 자신의 문제임에도 우리는 눈뜬 장님처럼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판단하지 못한다. 그러기엔 너무나 덥고 지치고, 짜증나는 현실에 우리는 피곤한 몸을 잠자리에 누이고 내일을 준비하는 것에 올인한다.
삶을 점검하는 것은 자동차의 엔진오일을 갈듯이 꼭 필요한 일이다. 나무그늘 아래 느긋하게 앉아서 쉬거나 며칠 동안 좋은 음악과 책들 속에 파묻혀 지내거나, 지인들을 만나 오랜 시간 여유롭게 담소를 나누는 것조차 힘들어진 우리. 그래서 오늘 하루를 기록하고 또 그 기록들이 쌓여 만들어진 나의 역사를 간직하고 되돌아보는 일은 더 소중하다.
오늘 하루를 기록해보자. 그 기록은 10년이 지난 어느 날, 내게 맑은 기억과 함께 10년 후의 나에게 현명한 대화가 되어 줄 것이다.
김진아/캠벨 이웰드 시장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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