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아닌 가족’의 푸드 뱅크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에게 토요일 아침 채소를 돌보는 시간은 정말 소중하다. 삶의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무공해 베이즐과 야채를 따는 재미는 무어라 말할 수 없다.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이러한 야채 기르기에 전념하는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작업이다. 앤드류 에커스(51)도 정원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 자원봉사자인 그는 에이즈 환자다. 휠체어에 의지해 산 지 8년이나 됐다. 괭이밥 종류의 식물을 좋아하는 에커스는 “이 생활이 너무 즐겁다”고 했다. 그러나 단순히 재미로 하는 게 아니다. 여기서 생산되는 신선한 야채로 영양을 섭취한다.
1999년 샌프란시스코 남쪽 70마일 소노마카운티에 설립
HIV보균자·에이즈 환자에 신선한 야채 등 영양 공급 목적
자원봉사자들이 손수 강낭콩·부추·토마토 등 유기농 재배
고객 450명… 여성과 히스패닉 각각 60명, 75명 ‘증가세’
대부분 민간 지원으로 운영… 호박으로 만든 예술품 경매도
이곳은 정원이라기보다 푸드 뱅크(Food Bank)라고 하는 게 어울린다. 이 푸드 뱅크는 1999년 세워졌다. 에이즈 환자들에게 유기농 야채를 공급할 목적에서다. 대형 공장에서 생산되는 물건과 달리 신선도가 매우 양호하다.
전직 식당 주방장으로 푸드 뱅크 가꾸기와 영양 식단에 대해서 가르치는 라첼 가드너는 “이 곳은 단순히 채소를 기르는 곳이 아니라 아름다운 정원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 푸드 뱅크는 비영리단체 ‘Food for Bank’가 운영한다. 자원봉사자 대다수가 에이즈 환자다. 강낭콩, 부추, 당비름 등 다양한 채소를 기른다. 이들 야채가 이 푸드 뱅크의 ‘주산물’이지만 이 곳에서는 다른 야채와 비타민도 공급한다.
샌프란시스코 남쪽 70마일 지점에 있는 이 푸드 뱅크는 소노마 카운티 주민들 가운데 음식과 와인을 즐기는 식도락 문화가 진해 수요가 있을 뿐 아니라, 1980년대 에이즈가 번질 때 에이즈 환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이 곳으로 빠져나왔기 때문이다.
소노마 카운티는 주민의 10%가 빈곤층이다. 그리고 유난히 에이즈 환자가 많다. 푸드 뱅크를 찾는 ‘고객’은 약 450명. 이 가운데 60명이 여성이고 75명이 히스패닉이다. 에이즈 환자들이 점차 여성과 소수계로 확산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성을 밝히기를 거부한 히스패닉 여성 수잔(56)은 “히스패닉 여성 가운데 상당수가 에이즈에 걸렸지만 숨기고 있다. 가족들도 모른다”고 실태를 말했다. 15년 전 수잔의 남편이 자살했다. 쪽지 한 장을 남겼다. 거기에는 “여보 미안하오, 내가 에이즈 환자요”라고 적혀 있었다. 당연히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아내 수잔도 에이즈에 감염된 것이다.
수잔은 청천벽력과 같은 남편의 메모에 망연자실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우울증세를 보였다. 그 후 수잔은 푸드 뱅크의 ‘식구’가 됐다. 수잔은 푸드 뱅크에서 식욕을 되찾고 다소나마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에이즈 환자들은 강력한 투약으로 인한 부작용에 시달린다. 식욕이 감퇴한다. 소화능력도 현저하게 저하된다. 에커스는 “머핀 한 조각을 보면 마치 거대한 산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빵 조각도 소화해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처음 에커스가 샌프란시스코의 전형적인 푸드 뱅크에 갔을 때 정부에서 제공하는 스파게티 소스를 받았다. 오래되고 맛이 없었다. 식욕이 떨어졌을 뿐 아니라 덩달아 건강도 나빠졌다.
그러나 이 곳 푸드 뱅크를 관리하는 ‘Food for Thought’는 다르다.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지만 대부분 민간 지원으로 운영된다. 예를 들어 예술가들이 푸드 뱅크에 있는 대형 호박으로 멋진 예술품을 만들어 경매에 부친다. 수익금은 고스란히 푸드 뱅크에 전달된다.
자원봉사자들은 가지를 치고, 지나치게 옆으로 삐져나온 줄기를 가위로 잘라낸다. 그리고 퇴비에 꿈틀거리는 벌레를 섞는다. 진짜 유기농이다. 학교 급식이나 교도소에서도 이렇게 기른 야채는 맛볼 수 없다. 소모나 카운티 보건국 분석가 앨런 니시카와는 “그저 영양식단을 수동적으로 받아들고 음식을 먹는 것보다 이렇게 자신들이 먹을 야채를 손수 가꾸고 영양을 생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이 푸드 뱅크는 식용 꽃, 차, 민트 등도 재배할 계획이다. 여기에 강낭콩, 괭이밥 등의 재배도 짭짤하다. 단지 겨우 버티는 수준이 아니라 시장에 내다 팔아 운영자금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하루에 토마토 87파운드를 수확했다. 정말 장난이 아니다.
이뿐 만 아니다. 이 푸드뱅크 봉사자들은 모두 가족이나 다름없다. 친구가 에이즈로 죽으면서 자원봉사 코디네이터가 된 스튜어트 스코필드는 “음식을 나누는 것은 마음이 통하고 영혼마저 움직일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친구이고 이웃이다. 서로를 돌본다”고 했다.
<뉴욕타임스특약-박봉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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