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과 유대인은 서양 문명의 정신적 바탕을 마련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비슷한 점도 있었지만 때에 따라서는 세상을 보는 눈이 정반대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나체에 대한 태도다. 그리스인들은 누드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중의 하나로 생각했지만 유대인들은 공공 장소에서 몸을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 했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가 근동 일대를 정복하고 이스라엘 일대가 그리스인의 지배를 받게 되자 집권자들은 유대 소년 소녀에게 나체로 운동할 것을 강요했다. 그리스 사회에서는 스포츠를 할 때 옷을 벗고 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히 유대인들의 극심한 반발을 샀고 훗날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반란을 일으켜 독립을 쟁취하는 계기가 됐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하누카는 지금도 유대인 최대 명절의 하나다.
올림피아에서 열려온 올림픽은 그리스 4대 스포츠 축제의 하나로 종교 의식의 일부로 시작됐다. 이들이 언제부터 올림픽을 즐겼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최초의 시합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BC 776년이다. 요리사가 직업인 크뢰부스라는 인물이 달리기에서 우승한 것으로 돼 있다 (처음 스포츠 종목은 달리기 하나 뿐이었다). 이 해는 그리스인들이 처음 같은 민족임을 자각했다는 증거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 그리스 건국 연도로 쓰이기도 한다.
처음에는 순수한 스포츠 정신을 고양한다는 취지로 아마추어에만 참가 자격이 주어졌으나 곧 도시 국가 간의 순위 경쟁으로 운동 전문가들의 잔치로 바뀌고 말았다. 대회 우승자는 지금처럼 영웅 대접을 받았으며 정부도 스포츠 육성을 위한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심판관과 조직 위원들을 위한 향응과 뇌물이 자주 등장한 것도 똑같다.
1896년 근대 올림픽을 부활시킨 쿠베르탱 남작은 대대로 군인 집안 출신이다. 1871년 프랑스가 프러시아에게 참패를 당하자 이를 설욕하는 것이 집안 모두의 꿈이었다. 그가 내건 구호는 ‘순수한 스포츠 정신의 명맥을 잇자’는 것이었지만 실제 목적은 프랑스 젊은이들의 체력을 단련시켜 다시는 보불 전쟁 패배의 치욕을 겪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2004년 올림픽이 올림픽의 본 고장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리고 있다.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나오는 것이 ‘스포츠의 순수성이 어떻고 아마추어 정신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올림픽의 역사는 이것이 처음부터 국가 간의 위신을 건 경쟁이었으며 순수성과는 거리가 먼 행사였음을 보여준다.
닉슨의 핑퐁 외교에서 남북한 탁구 교류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수단으로서의 스포츠의 성격은 지금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올림픽을 즐기는 것은 좋지만 ‘순수’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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