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정 <일리노이주립대 교수>
한국에서는 요즘 ‘세대교체’라는 말을 많이 한다. 특히 이번 17대 총선 결과를 놓고 많은 사람들은 한국사회에 세대교체가 완전히 일어났다고 말한다.
이런 분석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의 세대교체 현상이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시작되어 이번 총선에서 재확인되었고 이로 인해 한국사회의 이념적 흐름이 보수에서 진보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대략 45세를 기준으로 6.25전쟁을 경험했던 세대와 그 이후의 세대를 가를 때, 지난 대선과 총선을 치르면서 보수와 안정을 도모하던 전전(戰前)세대가 개혁과 진보를 추구하 는 전후세대로 교체되었다는 주장 이다.
하지만 한국의 인구분포를 보면 이러한 ‘세대교체’ 현상은 당연한 일 같기도 하다. 한국의 성인 인구 중 45세 이상은 30%를 조금 넘는데 비해 45세 이하가 거의 70%에 달하고 있다.
그래서 보수에서 진보로의 바뀜은 연령분포의 변화에 따른 자연적 추세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한국사회는 구미사회와 달리 자유주의라는 지적 전통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현재의 변화가 급격한 이념적 전환으로 비춰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세대교체’라는 말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세대라는 것은 이어져 나가는 것이지 교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체(replacement)가 아니라 승계(succession)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문제는 말만 ‘교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지배적인 사고와 행동이 세대를 교체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한국에서는 지금 한 세대를 몽땅 들어내고 그 자리에 다른 세대를 갖다 놓는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어느 때 어느 사회에서나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가 공존하면서 부모들이 그 가르침과 영향을 자녀에게 남기고 자녀들은 부모세대의 경험과 지혜를 통해 성숙의 과정을 거치면서 세대가 자연스럽게 계승되고 발전되는 것이라고 하겠는데,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를 몽땅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모습이다.
또 이번에 당선된 의원들의 면모를 보면 특히 새로운 세대에 팽배해 있는 한국식 ‘저항주의’를 읽게 된다. 당선자중 전과가 있는 사람이 20%에 달하고 남성의원 중 병역 미필자가 23%나 된다.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들이 어떤 이유에서건 실정법을 어기거나 교묘하게 피해가고 있다는 사실은 국민에게 불안감을 준다. 그들 중에 ‘anti’ 의식이 너무 강하다 보니 비판과 저항이 버릇이 되고 중독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염려된다.
이러한 저항주의가 한국의 새로운 세대에 널리 퍼져 있는 소위 대중주의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도 염려되는 부분이다. 세대간, 이념간의 갈등이 있다면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개선을 해야 할 터인데 촛불, 삭발, 단식, 삼보일배, 퍼포먼스, 이벤트 등의 감성적 장면만 연출되고 있다. 그래서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자기편을 만들려는 인기영합주의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모름지기 법을 만드는 사람들부터 먼저 법을 준수하고 체제와 질서유지를 존중하는 의식을 갖추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래서 법을 어기고 피하고 저항하는 행위는 진보주의, 저항주의, 대중주의, 민족주의, 감성주의, 기타 무슨 주의라는 이름 하에서도 정당화할 수 없고 세대교체라는 이름으로도 합리화할 수 없는 일이다.
거듭 지적하거니와 한 세대를 몽땅 다른 세대로 갈아치운다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한국사회는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경험과 연륜과 지혜를 포기한다는 말이다.
총선 결과 초선 의원이 전체의 63%인 188명에 달하고 재선율이 30%도 안 된다는 것은 이번 국회가 참신하다고는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연륜이 짧고 경험이 얕은 국회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그래서 더욱 ‘세대교체’가 아니라 ‘세대승계’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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