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한말 고종황제의 스승이었던 이종오 선생은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멕시코 이민선을 타야했던 비운의 인물.
고종의 지시로 1905년 을사조약이 맺어지기 전 왕실에서 일본에 저항하는 모종의 역할을 맡았을 것으로 보인다. 40세에 당시 9세의 어린 아들(이봉오)과 내시 4명, 몸종으로 추정되는 젊은 여성을 대동하고 1905년 유카탄의 메리다에 도착한 이종오 선생은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의 후손으로 1917년 메리다를 방문했던 안창호 선생과도 긴밀한 연락을 하면서 조국의 광복과 독립을 위해 힘썼다.
이 선생은 농사일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상당히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이종오 선생의 몸종은 멕시코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어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선생은 후에 김경은(사라 김)과 결혼했다. 이 선생은 자신에 대해서 전혀 주위에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정확한 실체를 파악할 길이 없다. 그러나 아들 이봉오가 한복순씨와 결혼할 당시 안창호 선생이 주례를 선 것으로 보아 안창호 선생과는 상당한 친분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선생은 한인회 간부로 일하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그 당시 의지할 데도 없고 살길이 막막하기만 했던 멕시코 이주 한인들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했다.
그의 외손녀가 이덕순이며 그녀의 아들 율리세스가 현재 메리다 한인회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종오 선생은 1946년 9월29일, 76세에 별세했으며 안식교인이었다.
그는 꿈에도 그리던 조국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메리다 공동묘지 판테온 헤네랄(Panteon General)에 묻혔다. 본보 기획취재단이 간신히 찾아낸 묘지에는 이 선생을 모셨던 내시들(페르난도 김, 마누엘 이, 마누엘 산체스)도 같이 묻혀 그가 왕가의 자손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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