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2일 미네소타 대학에서 열린 터닝포인트USA의 ‘미국의 귀환 투어’는 최근 미국 정치를 뒤흔드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운동의 내부 균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자리였다.
전통적 보수주의 원칙을 중시하는 벤 샤피로와, 엘리트·기업·정부에 대한 불신을 기반으로 한 반체제적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터커 칼슨은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공개적 충돌을 벌였다.
찰리 커크의 암살 이후 불거진 후계 구도, 엡스타인 파일 공개를 둘러싼 지도부와 강경파의 갈등, 우크라이나 지원과 AI 정책 같은 구체적 현안에서 터져 나오는 파열음까지, 이 모든 징후는 더 이상 ‘일시적 진통’으로 보기 어렵다.
그러나 극단주의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이들에게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극단주의 운동의 동력은 ‘우리는 선하고, 저들은 악하다’는 단순하고 강력한 이분법이다. 외부의 적이 강할 때는 이 논리가 결속을 만들어내지만, 적이 약해지거나 자신들이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면 그 칼날은 내부를 향한다. 그리고 ‘순수성 경쟁’이 시작된다.
최근 MAGA 내부에서 벌어지는 ‘변절자 사냥’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마조리 테일러 그린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갈등, 캔디스 오웬스 등 인플루언서들이 서로를 향해 ‘가짜 보수’라고 공격하는 모습은 극단주의 집단이 갖는 교조주의적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타협은 곧 배신으로 간주되고, 조금이라도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순간 숙청의 대상이 된다.
MAGA는 제도나 시스템이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라는 강력한 개인의 카리스마에 기반한 운동이다. 이런 구조는 리더의 권위가 흔들리거나 후계 구도가 불투명해질 때 급격히 붕괴하기 쉽다.
찰리 커크 사후 TPUSA 내부에서 벌어지는 주도권 다툼은 결국 “누가 진정한 MAGA의 적통인가”를 둘러싼 경쟁으로 변질되었다. 각 분파는 리더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더 자극적이고 더 선명한 메시지를 내놓으며 지지층을 갈라놓고 있다. 이는 외연 확장보다는 ‘누가 더 극단적인가’를 겨루는 치킨게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 MAGA는 단일한 정책 집단이라기보다, 기득권에 대한 분노로 결집한 느슨한 연합체에 가깝다. ‘미국 우선주의’라는 구호 아래에는 터커 칼슨과 랜드 폴 같은 고립주의자, 일론 머스크와 샘 올트먼 같은 기술 가속주의자, 마이크 펜스와 마이클 플린 같은 기독교 근본주의자, 스티브 배넌을 중심으로 한 대안 우파 세력이 뒤섞여 있다.
이들은 공통의 적(민주당, 딥스테이트)이 있을 때는 결속했지만, 실제 국정 운영 단계에 들어서면서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실리콘밸리 기반의 테크 우파는 AI 발전을 지지하지만, 중하층 노동자 기반의 지지층은 기술 혁신이 일자리를 위협한다고 느낀다. 이런 구조적 모순은 결국 ‘정체성의 분열’로 이어진다. 공유된 가치가 아니라 ‘분노’만으로 묶인 연대의 한계다.
극단주의 연구자 J. M. Berger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은 극단주의 운동이 시간이 지나면 “더 작고, 더 날카로운 조각” 으로 쪼개지며 소멸하거나 변질된다고 지적해왔다. 현재 MAGA가 겪는 분열은 단순한 내홍이 아니라, 타협을 거부하는 사상이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논리적 종착점에 가깝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분열된 MAGA의 파편들이 각자 더 극단적인 길로 치달아 미국 사회를 더 큰 혼란으로 몰아넣을 것인가, 아니면 이 파편화가 새로운 중도적 재편의 신호탄이 될 것인가.
확실한 것은, ‘통합된 MAGA’의 시대는 이미 저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5년의 끝자락, 혼란의 미국에서 소수계이자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는 어디에 우리의 좌표를 둘 것인지, 어떻게 이 땅에서 생존하고 번영할 것인지 더욱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특정 극단주의 세력의 ‘순도 경쟁’에 휘말려 그들의 불쏘시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집단적 광기가 내부를 향할 때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언제나 경계에 서 있는 소수자들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한 진영에 대한 맹목적인 투항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의 복잡성을 인정하는 유연성, 그리고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전략적 중도성이다. 거대 담론의 분열에 매몰되기보다, 우리 공동체의 실질적 권익과 생존을 위해 어느 쪽과도 대화할 수 있는 실용적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닫힌 공동체는 반드시 무너진다. 그래서 미주 한인 사회가 나아갈 길은 폐쇄적 충성이 아니라, 열린 연대와 냉철한 생존 전략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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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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