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그저 건너가는 다리일 뿐이다. 그 위에 집을 짓지 마라.” 그러나 사람은 다리 위에 집을 짓기 바쁘고 그 다리 위를 삶의 전부로 생각하다가 마침내 다리를 다 건너고 난 후, 아주 짧은 생의 간극(間隙)에서 삶은 미망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근사하게 지은 집이나 아직 다 짓지 못한 집이나 불문하고 다리를 건너는 순간 그 모든 것은 다리 밑으로 낙엽처럼 던져진다.
요즘 많이 회자되는 노랫말이 있다. - 하늘에서 떨어진 별인 줄 알았어요/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별/몰랐어요 난 내가 개똥벌레라는 것을/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
개똥벌레의 자각은 대견하다.
하지만 마지막 소절은 없어야 좋았지 않았을까.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 미망(迷妄)이다. 미안하지만 개똥벌레가 빛나는 건 없다.
인간의 불행은 자꾸만 한계를 이탈하는 데 있다. 그리고 함부로 자기를 동정한다. 내가 건널 다리는 이제 그 막장에 와있음에도.
어느 지인의 초상집에 갔었다. 임종 즈음을 지켰던 분이 말했다. “막 숨이 지는 그때 얼마나 인상이 험악해지는지 놀랐어요. 누군가와 사투를 벌이는 것 같았어요. 마귀였을까요? 신앙이 참 좋은 분이셨는데 왜 평온한 얼굴이 아니었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말했다.
“왜 사투를 벌였다고 생각하세요? 얼굴 표정은 꼭 일률적이지 않습니다. 촛불이 막 꺼져가는 순간, 몸이 아니라 영혼이 몸서리치도록 아팠는지 모르지요. 아마 1초, 2초였을 겁니다. 그리 길지 않은 찰나에 어쩌면 슬펐는지도, 아니면 기뻤는지도. 그 표정만으로는 모르지요. 사람 모습에서 가장 미운 표정은 울 때지만 사실은 가장 아름다운 시간인 것처럼.”
-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
역시 미망이다. 멈춰야 한다. 자신이 반짝이지도 눈부시지도 않는 벌레였음을 인지하고 눈을 감고 종착역에 서야한다.
오래 전 읽은 글인지, 누가 전해줬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이런 기억이 있다. 어느 신혼부부가 살림할 집을 구하려고 돌아다니다가 으리으리한 집들이 즐비한 동네를 지나치게 되었다. 성곽 같은 담 너머로 울창한 수목이 그 위용을 자랑하는 풍광을 보며 저런 집에 사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부러웠다.
그런데 그 중 한 집의 대문이 갑자기 열리며 조그만 계집아이가 울며 나왔다. 뒤 이어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헝클어진 머리채를 쓸어 넘기며 뭐라고 악을 쓰면서 뛰쳐나와 집 앞에 세워 논 차에 올라탔다.
그러자 남편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몽둥이를 들고 여자가 탄 차를 향해 돌진하더니 차의 뒤꽁무니를 박살냈다. 어린 딸은 떨고 서 있고 아빠는 사라진 엄마의 뒤에다 대고 원수를 향해 울부짖듯 고함을 쳤다. 신혼부부는 너무나도 엄청난 장면 앞에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곳을 떠났다.
행복한 가정과 그 가정에 사는 행복한 사람은 표가 난다는 말은 거짓이다. 그 가정이 얼마나 넉넉한 사랑을 나누며 사는지는 거기 사는 사람들의 표정을 통해 읽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런 말을 믿으면 안 된다.
오래전 미국의 배우 제인폰다와 억만장자 터너가 결혼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그대는 나의 운명입니다.” “그대는 마침내 찾은 내 사랑이요.” 얼마나 정감 넘치는 말인가. 그러나 그들은 이런 대화를 나눈 얼마 후, 운명처럼 등을 돌리고 헤어졌다.
다리위에선 많이 일들이 일어난다. 나는 눈부시지도 빛나지도 않는 존재임을 자각하고 주어진 다리 위의 시간을 잘 견디며 가기를 바란다.
나는 미망(迷妄)이라는 단어를 선호한다. 인간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치고는 이만한 단어가 없다. 모든 게 미망이다. 그래서 인간은 미망에서 구원(救援)되어야 할 낙엽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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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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