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륜에 비례하는 관심사는 무엇보다도 건강 문제일 것 같다. 건강 유지를 위해서 걷는 것이 유익하다는 친구들의 권고로, 하루 중 가능한 한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걷기 운동을 한지가 꽤 오래되었다.
10월의 날씨는 걷기에 딱 좋은 계절인 것 같다. 집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걸으면 리틀넥 베이를 끼고 운치 있는 산책로가 이어진다. 길변에는 여름 내내 뜨거운 열정으로 피어나던 모든 생명들이 이제 열매와 씨앗을 안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가을 길을 걷는 나의 삶에서도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사색에 잠겨본다.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네 여정에도 때로는 한여름의 폭염처럼 정신없이 열정을 뿜어내던 푸른 시절이 있었다. 그 열기 속에서 환희에 들뜨고 때로는 시련에 아파했던 지난 날들이 이제는 저마다의 빛깔과 모양을 지닌 ‘열매’가 되어 우리 삶의 곳곳에 매달려 있다.
어제의 고달팠던 언덕들을 지나 이제 풍요로운 가을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그래서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가을은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미국의 철학자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씨앗 속에는 보이지 않는 숲이 잠들어 있다”고 했다.
이렇듯 모든 것이 지고 마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품고 있기에, 가을은 평온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가 맺은 열매는 비단 눈에 보이는 성공이나 성취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었던 따뜻한 눈빛, 어려움 속에서도 지켜왔던 선한 마음, 실패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며 배웠던 지혜,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 속에서 느꼈던 감사와 기쁨이 바로 우리가 평생 가꾸어온 소중한 흔적이다.
마치 화려했던 꽃잎이 진 자리에 묵묵히 들어서는 열매처럼, 우리 생의 가을은 지나간 시간들이 남겨준 풍요로운 선물인 것이다. 그리고 그 열매 속에는 어김없이 새로운 시작을 약속하는 ‘씨앗’이 담겨 있다.
모든 것을 다 이룬 듯한 감사함 속에서, 우리는 이 씨앗을 통해 또 다른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지난날의 경험과 지혜로 단단해진 껍질에 싸인 이 씨앗 속에는 우리가 만들어갈 새로운 미래를 향한 미지의 도전과 희망이 담겨 있다.
모든 꽃이 지고 열매를 맺는 10월 오후의 산책로에서 자연의 섭리를 바라보며 삶의 순환을 배운다.
지난날의 모든 순간에 감사하며 정성껏 우리의 열매를 거두어들일 때이다. 그리고 그 안에 깃든 작은 씨앗들을 소중히 품고 다가올 날들에 대한 소망을 그려보자.
비록 화려한 꽃은 졌지만, 그 자리에는 더 단단하고 아름다운 열매와 무한한 가능성의 씨앗이 있기에 우리 인생의 가을이 이토록 깊고 찬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나이다.” (시편 104편 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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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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