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8일 네팔 반정부 시위 사태 후 카트만두의 힐튼호텔이 방화로 불탔다. 2016년 착공해 지난해 7월 문을 연 이 호텔은 셰르 바하두르 데우바 전 총리의 아들과 그의 아내이자 외무장관인 아르주 라나 데우바가 지분 과반을 인수했다는 소문이 퍼지며 특권층 세습주의인 ‘네포티즘(nepotism)’의 상징이 됐다. 그동안 불평등에 분노해온 젊은 세대는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시위는 수실라 카르키 전 대법원장이 임시 총리로 취임하면서 가까스로 진정되기는 했지만 7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젠지(Gen Z) 혁명’이라 불리는 이번 사태의 도화선은 정부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차단 조치였지만 그보다 더 깊은 뿌리는 경제적 불평등이다. 2019년 기준 네팔의 소득 지니계수는 0.585로 세계 최악 수준이다.
네팔뿐 아니라 남아시아 지역의 불평등 시위는 도미노 현상처럼 이어졌다. 올해 8월 인도네시아에서는 의원들이 최저임금의 10배에 달하는 주거수당을 챙겨온 사실이 드러나며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지난해 방글라데시에서는 재벌 부패와 부자 감세가 겹쳐져 정권 붕괴를 촉발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에 참여하며 대규모 차관을 들여와 인프라를 건설했지만 이익은 권력층이 독식하고 빚 부담은 서민이 떠안게 됐다는 아픈 현실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네팔의 정치 불안이 주변국으로 번지며 남아시아 전역에 반중 정서를 확산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유럽의 세르비아에서도 일대일로 사업의 일환으로 건설된 고속철이 붕괴한 뒤 반정부 시위가 격화됐고 테니스 영웅 노바크 조코비치가 세르비아를 떠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며 부패한 친중 정권에 경고음이 울렸다. 청년 세대의 분노는 더 이상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 불평등은 우리 사회에서도 정치·사회 갈등의 뇌관이다. 한미 무역 협상 여파로 국내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는 청년층에 일자리 불평등이라는 또 다른 불안을 안길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내 투자를 활성화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이를 통해 불평등을 완화하는 일이다.
<김현수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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