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하고 바다에서 딴 해삼, 멍게, 전복을 다라이(대야)에 놓고 몸 헹구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저거 좀 줘 봐요’ 하고 해산물을 팔라고 하더라고. 그러다가 잘라 달라고 하면 잘라서 주고... 그게 시작이었어 여기는." <부산 해녀 임말숙>
부산 기장군 대변리 해녀촌의 시작은 소박했다. 번드르르한 가게는커녕 천막 포장마차도 아니었다. 심지어 좌판도 없었다. 해녀들이 바다에서 갓 건진 싱싱한 해산물을 넣어둔 붉은 고무 대야가 전부였다. 대야에 담긴 해산물을 본 행인들이 알음알음 찾기 시작하면서 해녀들이 대변항 근처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대야가 좌판이 되고 좌판이 상이 됐다.
해녀촌에는 해녀들이 기장 앞바다에서 잡은 멍게, 전복, 낙지, 고둥, 해삼, 개불, 조개 등을 판매하는 해산물집 수십 곳이 모여 있다. 여름휴가를 맞아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해녀촌도 요즘 성업 중이다.
■전복, 소라, 멍게$ 기장해녀촌
부산항, 광안리, 해운대, 송정해수욕장 등을 지나 부산의 동쪽 해안선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점차 마천루 풍경과 도시의 화려한 불빛이 하나둘 사라진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의 정취가 느껴질 때면 기장군이다. 기장군은 대변항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지명에 섣불리 발길을 돌리면 안 된다. 유쾌하지 않은 지명이지만, 본래 조선시대 대동고(大同庫·지역의 잡역·경비 조달을 관장하는 기관) 옆 항구라 ‘대동고변포’라 부르던 것이 줄임말인 ‘대변포’로 정착했다. 인근 ‘대변초등학교'는 재학생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용암초등학교'로 개명했다. 하지만 대변리 주민들은 꿋꿋하게 입에 붙은 지명을 유지하고 있다.
기장의 자랑인 미역과 멸치는 대부분 대변항을 통해 들어온다. 해조류가 풍부해 해조류를 먹이 삼는 전복, 성게, 소라, 해삼 등이 풍부하다. 풍부한 해산물을 품은 항 덕분에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해녀들이 기장에 모였다. 대변항 동쪽 끝은 대변리 해녀촌, 서쪽 끝은 연화리 해녀촌이 있다. 대변리 해녀촌은 10년 전 정비 사업으로 현대식 건물로 바뀌었다. 반면 연화리 해녀촌은 천막 포장마차 형태여서 하절기(7~9월)에는 문 닫는 곳이 많다.
임말숙(78) 해녀는 “물질한 해물을 처음 팔기 시작한 게 40년이 넘었는데, 그때 왔던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찾아온다"며 “전국 어디서도 이만한 해산물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평생 해온 물질을 딸의 만류로 지난해 그만뒀다. 하지만 동료 해녀 20여 명 중 6명은 여전히 직접 해산물을 딴다.
집집마다 손맛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내는 음식의 종류는 대동소이하다. 해물모둠, 전복죽, 장어구이가 주력이다. 해산물이나 장어로 시작해 따뜻한 전복죽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이곳의 ‘코스’다. 가게에 따라 붕장어(바닷장어·아나고)를 취급하기도 하고 먹장어(꼼장어)를 취급하기도 한다.
가게 대부분이 간판에 ‘전복죽 전문’을 내세울 만큼 전복죽은 해녀촌의 대표 메뉴로 통한다. 끓인 솥째로 상에 올린다. 도시에서 흔히 접하는 전복죽과는 거의 다른 음식이라 해도 좋다. 전복죽의 맛을 결정짓는 내장이 아낌없이 들어가 첫술을 뜨기 전부터 색과 향에 압도당한다. 짙은 녹색 죽에서 농밀한 전복 향이 얼굴을 덮친다. 한껏 오른 기대감은 맛을 봐도 꺾이지 않는다. 녹진하고 깊은 감칠맛에 금세 솥 바닥이 드러난다. ‘죽까지 먹으면 너무 배부르지 않을까’ 했던 고민이 무색하다.
지금은 해녀 한둘마다 가게 하나를 따로 하지만, 한때는 마을의 해녀가 한 몸으로 움직였다.
임씨는 “천막 대여섯 개 펴놓고 하루건너 하루 쉬며 당번제로 같이 일했다”고 했다. 각자 가게를 낸 이후에도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는 한 집씩 돌아가며 24시간 영업을 했다. 임씨는 “6시가 되면 손님을 다 한 가게로 보냈지. 밤새 꼬박 가게를 보다 다음 날 아침 대여섯 시쯤 다른 가게 사람들이 나오면 들어가서 잠자고 했지”라고 덧붙였다. 밤늦게 멍게에 소주 한잔 생각나 이곳을 찾는 이들을 위한 배려였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가게들이 오후 7시(하절기)면 마지막 주문을 받는다. 가게를 운영하는 해녀들의 고령화로 일손이 부족해서다.
■'붉은 대야의 좌판' 기장시장
대변항 일대에 어촌 생활을 느껴볼 수 있는 곳들도 많다. 대변항에서 북서쪽으로 3km 남짓 가면 기장시장이 있다. 시장은 광복 전인 1944년 기장군 기장읍 동·서부리 오일장에서 유래했다. 1995년 기장군이 부산시로 통합되기 전부터 부산에서부터 수산물을 사러 오는 이들이 많았다. 높은 인기 덕에 1960년부터 상설화돼 4년 후에 현재 위치인 기장읍 대라리로 이전했다. 지금도 기장의 중심시장으로 평일에도 손님으로 북적인다.
기장시장은 통상적인 재래시장과 사뭇 다르다. 청과물, 잡화 등 종합시장이지만 바닷가 특성상 해산물 판매 비중이 유독 높다. 특히 대부분 좌판에서 판매한다. 전체 상인의 70%가 좌판 상인이다. 낮은 좌판 위에 올린 빨간 대야에 해산물이 가득 담긴 풍경이 기장시장의 자랑이다. 대야마다 전복, 소라, 멍게 같은 해물과 미역, 다시마, 파래 등 해초가 한가득이다. 시장에서 바로 먹을 수 있는 횟감도 판매한다. “바로 먹게 한 다라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꼼장어를 능숙하게 슥슥 썰어 무심하게 대야에 툭 던져 파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시장에 익숙지 않은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기장시장의 풍경은 신선하고 이색적이다. 부산 자갈치시장이나 깡통시장은 지역 주민보다 관광객이 더 많은 관광지라면 기장시장은 지역 주민들의 삶의 터전에 더 가깝다. 십자 모양으로 교차하는 도로를 따라 형성된 시장은 남측이 좌판은 많고 호객 행위는 적어 둘러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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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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