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주기 맞아 모교 릿쿄대 교정에 설립…재학 시절 쓴 시·사진 실려
▶ 총장 “시인 가르침 계속 전할 것”…주일대사 “화해·협력 가교 되길”

(도쿄=연합뉴스) = 일본 도쿄 릿쿄대에서 11일(현지시간) 제막식을 통해 공개된 시인 윤동주 기념비. 도쿄에 윤동주 기념비가 세워진 것은 최초로 알려졌다.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80주기를 맞은 저항시인 윤동주가 1942년 6월 3일(이하 현시간) 한글로 쓴 '쉽게 씌어진 시' 일부다. 그는 이 시를 쓸 때 도쿄 릿쿄대 학생이었다.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윤동주는 1942년 4월부터 반년간 릿쿄대에서 공부했고 이후 교토 도시샤대에 편입했다.
윤동주의 도쿄 모교인 릿쿄대 교정에 11일 그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도시샤대와 교토 시내에는 윤동주 시비(詩碑)가 있지만, 도쿄에 윤동주 관련 비석이 건립된 것은 최초로 알려졌다.
릿쿄대 서쪽 14호관 인근에 설립된 기념비에는 윤동주 사진, 윤동주의 릿쿄대 생활을 설명한 짧은 글, 쉽게 씌어진 시와 일본어 번역본이 실렸다.
윤동주는 릿쿄대 재학 중에 순수하고 서정적인 시를 썼고, 백합 문양이 인쇄된 릿쿄대 편지지에 적은 시 5편의 원본이 연세대 윤동주기념관에 보존돼 있다.
니시하라 렌타 릿쿄대 총장은 이날 기념비 제막식에서 "80년의 세월을 거쳐 윤동주 시인이 릿쿄대에 돌아왔다"며 "윤동주가 일본 유학 중에 남긴 시는 거의 상실됐는데, 그가 친구에게 맡긴 시 5편은 기적적으로 남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윤동주가 재학 시절 사제들과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제들의 집이 비석 인근에 있었다고 한다"며 윤동주가 비석이 있는 길을 아마도 걸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윤동주 시인의 평화, 생명에 대한 가르침을 지속해서 전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윤동주 조카인 윤인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인사말에서 "일본에서는 유학 중 옥사한 시인에 대한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이 이어졌으며, 평화와 화해를 지향하고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윤 교수는 "교토에는 윤동주 시비가 있고, 옥사한 후쿠오카에서는 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이 지속되고 있다"며 릿쿄대 기념비 설립을 계기로 시인 윤동주를 기리는 물리적 터전은 모두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기념비가 맑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출발점이 돼 젊은 세대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윤동주는 도시샤대에 다니던 중인 1943년 조선 독립을 논의하는 유학생 단체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해방 반년 전인 1945년 2월 16일 옥사했다.
이혁 주일 한국대사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인 올해 제막된 이 기념비가 윤동주의 문학과 생애를 기리는 존재를 넘어 한일 양국의 화해, 협력으로 이어지는 가교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릿쿄대 뿌리는 성공회 선교사가 세운 학교다. 제막식은 예배 형태로 진행됐고 마지막에는 참가자들이 꽃을 바쳤다.
행사를 집전한 사제는 "태평양전쟁 패전으로부터 80년을 맞이한 이때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희생된 모든 이들을 기억하며 특히 시인 윤동주를 마음에 새긴다"며 "그가 남긴 정의의 시를 통해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깊은 반성을 배우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제막식에 앞서 재일동포를 상대로 장학사업을 하는 한국교육재단과 릿쿄대 외국어교육연구센터는 '시인 윤동주와 함께하는 릿쿄의 가을'이라는 이름으로 시 낭송, 시화 대회를 열었다.
윤동주는 작가 이바라키 노리코가 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인용해 쓴 수필이 1996년판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일본에도 널리 알려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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