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9년 2월4일 이집트 카트리나 수도원. 독일 성서학자 프리드리히 티센도르프(44세)가 상심에 젖었다. 도착한 지 닷새가 지나도록 소득이 없었다.
짐을 꾸리기 직전 수도원 책임자에게 라이프치히에서 발간한 구약 70인역 성경을 선물했더니 돌아온 말. “우리도 70인 역본이 있습니다.” 외부인에게는 잘 공개되지 않는 방의 벽장에서 꺼낸 붉은 보자기에 담긴 양피지 꾸러미를 보고 티센도르프는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한번 읽어나 보죠.” 흥분 상태에서 밤새워 양피지 꾸러미를 검토한 티센도르프는 기쁨을 더 이상 감출 수 없었다. 구약의 절반 이상과 신약의 거의 전부, 외경까지 포함된 방대한 성서 사본이었기 때문이다.
애써 태연한 척하며 매입 의사를 밝히자 수도원 측은 손사래를 쳤다. 그리스 정교회(Orthodox Church)의 종주 격인 러시아 차르(황제)의 소개장도 소용없었다. 간신히 필사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티센도르프는 카이로에 체류 중이던 독일인 서점상 등을 불러 두 달 만에 무려 11만행에 이르는 사본 전체를 베꼈다. 동시에 긴급 도움 요청을 보냈다. 러시아 차르가 공석 중인 수도원 총원장과 대교구 선출권 등을 약속하며 달랜 끝에 티센도르프는 ‘빌려간다’는 각서를 쓰고 사본 전부를 손에 넣었다. 신약성서로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완벽한 것으로 평가받는 ‘시나이 사본(Codex Sinaiticus·사진)’이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카트리나 수도원은 왜 소중한 성경을 꽁꽁 감췄을까. 무지와 방어심리 탓이다. 티센도르프가 이 수도원을 처음 방문한 시기는 1844년. 청년(29세) 티센도르프는 진귀한 보물을 발견하고는 이렇게 썼다. ‘내가 본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는 희랍어 성서 사본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귀한 성서 사본이라는 티센도로프의 말에 한 수사의 탄식이 돌아왔다. “썩은 양피지 두 광주리는 이미 땔감으로 썼는데….” 수도원에서 43묶음만 얻은 그는 라이프치히에 돌아와 1846년 발간,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1853년 다시 찾은 수도원의 반응은 냉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양피지’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시달린 뒤끝이어서 창세기 몇 장만 얻은 채 돌아왔다. 1859년 3차 방문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둔 그는 시나이 사본을 차르 알렉산더 2세에게 헌정하고 출판 후원금도 얻어냈다. 소비에트 러시아는 공산혁명 후 1933년 10만파운드(요즘 가치 약 109억원)를 받고 영국에 넘겼다. 소련은 현명했을까, 무지했을까.
<
권홍우 선임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