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네게 흐르는 마음을 깨닫고/ 서둘러 댐을 쌓았다/ 툭하면 담을 넘는 만용으로/ 피해 주기 싫었다/ 막힌 난 수몰지구다”
전윤호 시인의 시 ‘수몰지구’의 도입부이다. 사랑하는 이를 향한 마음이 너무 커서 시인은 담을 쌓아 마음을 가둔다. 감당할 수 없이 커지는 마음이 흘러 넘쳐 상대에게 피해를 줄까봐 단속을 하는 것이다. 스스로 수몰지구가 되고 나니, “불기 없는 아궁이엔 물고기가 드나들고/ 젖은 책들은 수초가 된다”. 아프고 서글픈 마음의 풍경이다.
하지만 아무리 아파도 마음속의 일일뿐. 태어나면서부터 삶의 무대였던 고향마을이, 수십년 살던 집이 통째로 물에 잠기는 진짜 수몰지구의 아픔에 비할 수는 없다. 아궁이나 책 정도가 아니라 안방 건넌방 부엌 마당 …집안 전체가 송두리째 물에 잠기는 충격을 70년대 ~ 90년대 한국에서는 많은 이들이 경험했다.
홍수 등 자연재해를 예방하고 생활용수와 공업 농업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댐 건설사업이 당시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다. 댐이 건설될 때마다 수몰지역은 생겨나고, 주민들은 삶의 뿌리를 뽑아내야 했다. 예를 들어 85년 준공된 충주댐 건설로 고향 잃은 이들이 7,100가구, 91년 완공된 주암댐 건설로는 2,336가구 1만2750명이 고향을 잃었다.
이주 후 주민들은 망향각을 세우고 망향제를 지냈고, 제사나 명절 때면 댐을 찾아가 “저기 저∼ 물 아래 ~”를 되뇌며 회한에 빠졌다. 이제 그 세대 대부분은 세상을 떠나고, 그곳이 마을이었다는 사실조차 기억에서 사라졌다. 20세기 말 개발이 몰고온 수몰이었다.
21세기 들어 기후변화가 심해지면서 수몰의 규모가 달라지고 있다. 한 두 마을이 아니라 한 나라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을 지경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극지방의 빙하와 만년설이 녹아내리면서 바닷물의 양이 증가하고,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서 물이 팽창하여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생기는 일이다. 전 세계 해안도시 수백 곳과 여러 나라들은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수몰의 위험을 실감하고 있다.
현재 수몰 국가 1호로 지목받고 있는 나라는 남태평양의 투발루이다. 호주와 하와이 사이, 9개 산호섬으로 구성된 작은 나라이다. 면적은 서울의 종로구보다 조금 넓고, 인구는 1만 1천여명 정도. 고대로부터 폴리네시아인들이 이주해 인근 섬들에 퍼져 살아왔는데, 지대가 아주 낮은 것이 특징이다. 국토의 평균 높이가 해발 6피트, 최고 높은 곳이라야 해발 15피트에 불과하다.
그런데 해수면이 점점 높아져서 30년 전보다 이미 6인치가 높아진 상태. 불과 25년 후인 2050년이면 밀물 때마다 국토의 대부분이 물속에 잠길 전망이다. 지구 온난화가 지금 속도로 계속될 경우 2100년이면 해수면이 6피트 더 높아질 것으로 유엔은 추정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투발루의 땅 95%는 물속에 잠긴다. 어디로 피할 데도 없으니 온 국민이 수장 당할 판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전국민 호주 이주 플랜이다. 호주와 투발루는 세계 최초로 기후 이주 협정을 맺고, 투발루 국민들이 호주로 이주해 살 수 있도록 영주권을 주는 특별 비자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매년 280명씩 40년에 걸쳐 이주한다는 플랜인데 내년 이주희망자가 이미 5천명에 달한다. 당국은 로토추첨 방식으로 이주자를 결정할 계획이다.
투발루는 온실가스 배출과는 거리가 먼 나라다. 그럼에도 지구온난화의 직격탄을 제일 먼저 맞는다니 억울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잘잘못을 떠나 지구상에 사는 우리 모두는 운명공동체라는 말이 된다. 그러니 투발루의 위기 역시 남의 일이 아니다. 언젠가는 우리 발등의 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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