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버지니아 주 의회에서 모처럼 총기규제 법안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으나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무산됐다. 수치스러운 날이었다.
전쟁터도 아닌 우리 이웃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 심지어 어린이 놀이터에서도 총기에 희생되는 일이 발생했지만 정치인들의 입장은 한결 같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총기판매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버지니아 민주당 상원대표 딕 새슬로 의원은 “전미총기협회(NRA)가 의회를 장악했다”고 개탄했다.
총기규제 여론에 밀려 공화당 상원대표(토미 놀먼)가 제출했다가 하루 만에 철회했던 법안도 그다지 실효성을 기대하기 힘든 내용으로 직접적인 총기규제라기 보다는 그저 정부 건물에서 총기를 소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 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모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법안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던 토미 놀먼 의원을 보면서 새삼 NRA 로비스트의 파워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들은 총기에 희생된 사람이 있는데도 총기는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그러한 총기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모두가 총기로 무장해야한다는 논리를 편다. 서로가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살벌한 사회가 아닐 수 없다. 모두가 불안해하는데 정작 버지니아 정치인들은 자신과 상관없는 남의 일인 양 소위 ‘총기권력’에 붙어 눈치 보기에 바쁘다.
총기규제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수정헌법 2조를 들먹이며 다시금 구차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다른 누군가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개인의 권리를 위해 과연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이 필요한가.
백악관의 앞마당을 자처하며 역대 수많은 대통령을 배출한 버지니아, ‘견제와 균형’을 통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버지니아 젠틀맨’은 모두 죽었다. 체면도 양심도 저버린 위선자들만 남았다.
그렇다고 실망만하고 포기할 수는 없다. 오는 11월 버지니아 주 상·하원 140명 모두를 동시에 뽑는 선거가 치러진다. 그저 남 탓만 하고 외면하기에는 우리를 겨누고 있는 총구가 지금 너무 가까이 와버렸다. 다음 총기 희생자는 바로 우리가 될 수도 있다. 지금이야말로 ‘버지니아 젠틀맨’을 살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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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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