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 이스라엘에서 동굴 유적 발굴에 참가했다. 당시 미국에서 이스라엘로 가는 직행 항공노선이 없어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하룻밤 묵고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에 도착해서 북부 하이파라는 운치 있는 도시까지 갔다. 알고 봤더니 하이파는 유명한 휴양 도시였다. 거기서 다시 유적을 찾아 들어갔다.
짐을 숙소에 풀고 하룻밤 묵은 다음 아침식사를 했다. 마을버스 급의 봉고차를 타고 발굴 현장까지 겨우 도착했다. 산 중턱의 동굴이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갔더니 이상하게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 동굴은 발굴 작업이 시작되기 직전까지도 목동들이 양과 염소를 치면서 쉬어가던 휴식처로 이용되었다고 했다.
역한 냄새는 바로 흙에서 났다. 흙 위를 걸어보니 폭신폭신한 느낌이었지만 한 발짝 한 발짝 뗄 때마다 먼지 같은 것이 풀썩 일어나기도 했다. 흙이 왜 이렇게 폭신한지, 그리고 이 이상한 냄새는 어디서 오는 것인지, 물어봤다. 그리고 알아냈다.
목동들이 데리고 다니던 양과 염소들이 시원한 동굴 안으로 들어와서 볼 일을 봤던 것이다. 적어도 수천 년 동안 계속되어왔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양과 염소가 싼 똥이 쌓이고, 굳고, 삭으면서, 박테리아와 다른 생물들이 거쳐 간 다음에 남은 결과로, 폭신하면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흙이 된 것이었다.
역한 냄새의 원인을 알고 나니 더 비위가 상했다. 나는 동굴 바깥쪽을 맡아서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이 되어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왜냐하면 휴식과 점심 모두 동굴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작은 낚시 의자에 앉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땅바닥에 그냥 앉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은 “땅바닥”이 아니라 “똥바닥”이었다.
비위가 상해서 동굴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도 쉬지 않고 일했다. 그렇게 괴로운 일주일이 지나갔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어느 날 아침 발굴 현장에 갔는데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약간 고소한 듯(?) 한 느낌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낚시 의자에 앉아서 쉬기도 하고, 간식과 점심을 먹는다. 급기야는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에 풀썩 주저앉게 된다. 첫 일주일 거의 못 먹었던 경험은 완전히 만회가 되어서, 발굴 경험을 마칠 즈음에는 오히려 체중이 더 붙었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인간의 적응 능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생생히 경험했다. 어느 환경에도 익숙해질 수 있는 막강한 적응 능력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한다. 인류가 수백만 년을 거쳐 새로운 환경에서 성공적으로 적응하여 전 세계로 퍼질 수 있었던 저력의 기원이다.
그리고 요즘 한국과 미국 정치계에서 드러나는 일들을 보면서 그때를 다시 생각한다. 인간의 위대한 적응 능력은 양날의 칼이다. 믿을 수 없이 고약한 냄새에도 시간이 흐르면 익숙해지듯이, 어처구니없는 부패와 막무가내와 억지에도 익숙해진다.
정치판에서 돌아가는 일들을 보면서 지금은 매일매일 경악하고 악취를 느끼지만 이렇게 앞으로 계속된다면 어느 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고 익숙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감각을 마비시키지 않도록, 인간의 막강한 적응력을 발휘해서는 안 되는 시대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에 간 지 20년이 지난 후 당시 발굴 책임교수를 학회에서 다시 만났다.
“절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20여 년 전에 하요님 발굴 현장에 있었던 이상희입니다.”“기억하고말고요! 오자마자 쉬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열심히 일만 하던 한국학생을 아주 잘 기억하지요.”내가 그 때 왜 쉬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열심히 일만 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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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UC 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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