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차때와 다를게 없는데 영장발부 유감
▶ 직원들 사기저하 따른 업무차질 우려
법원이 한국시간 1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특검이 재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하자 삼성은 설마설마했던 일이 현실로 벌어졌다며 큰 충격에 빠졌다.
삼성 관계자는 "특검이 제기한 혐의가 큰 틀에서 1차 구속영장 청구 때와 다를 게 없는데 법원이 영장을 발부해 심히 유감"이라며 "향후 본 재판에 성실히 임해 혐의를 벗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서도 2차례 특검 조사를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뇌물공여와 횡령 등 주된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순실 씨 측에 제공한 승마 지원금 등은 청와대의 강요에 의한 것일 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는 무관하며,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 역시 대가 없이 낸 '준조세' 성격의 돈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이번에 특검은 새롭게 제기한 '명마 블라디미르 구매 우회 지원' 혐의 등에 대해서도 사실무근임을 입증하고자 애를 썼으나 법원은 특검의 손을 들어줬다.
삼성 계열사 임원은 "마치 둔기로 한 대 맞은 것은 충격을 받았다"며 "총수 부재로 인한 문제 중 하나는 임직원들의 사기 저하"라고 말했다.앞으로 총수인 이 부회장이 수의를 입고 특검에 불려 다니고 법정에 출석하는 일이 계속될 텐데, 의욕을 가지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반응이다.
삼성의 다른 직원은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경쟁사인 애플의 팀 쿡 CEO가 미국 사법당국에 구속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한국에서 지금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19시간 장고' 끝에 영장발부한 한정석 판사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결정을 내린 한정석(39•사진•사법연수원 31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에게 관심이 쏠린다.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한 판사는 1999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육군 법무관으로 복무를 마치고 수원지법 판사로 임관했다.이후 서울중앙지법과 대구지법 김천지원, 수원지법 안산지원을 거쳐 2015년부터 다시 서울중앙지법에서 근무 중이다. 법관 인사에 따라 이달 20일 제주지법 부장판사로 전보될 예정이다.
한 판사는 지난해 11월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청구한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구속영장을 심사해 발부했다. 한 판사는 당시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발부 사유를 밝혔다. 반면 최씨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학사 특혜 의혹과 관련해 특검이 청구한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의 구속영장은 기각했다. 이는 이대의 정씨의 '학사 비리' 수사와 관련해 영장 청구가 기각된 첫 사례였다.
■2평 독방 '삼성총수'…김기춘•최순실 '한솥밥'
구속이 결정된 국내 1위 기업의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56㎡(약 1.9평)짜리 서울구치소 독방(독거실)에 수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앞서 구속한 '비선 실세' 최순실(61•구속기소) 씨,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도 이곳에 수감돼 있어 '구치소 동기' 신세가 됐다.
서울중앙지법 한정석(39•사법연수원 31기) 영장전담 판사는 19시간여에 이르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거쳐 한국시간 17일 오전 5시35분께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영장심사 이후 서울구치소에서 대기 중이던 이 부회장은 이곳에 그대로 수감됐다.
서울구치소는 고위 관료, 기업인 등 정•관계와 재계 거물급 인사가 주로 거쳐 가는 곳이라 '범털 집합소'로 불린다. 범털은 경제•사회적 지위가 있는 수용자를 일컫는 은어다.
현재 김 전 실장, 조윤선(51)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곳에 수용돼 있다. 최순실 씨와 김종 전 문체부 2차관, 최씨 조카 장시호씨, 광고감독 차은택씨 등 '최순실 게이트' 관련자들이 모두 와있다.구치소에 수용된 구속 피의자는 모두 같은 절차를 밟는다.
인적 사항 확인 후 감염병 확인 등 간단한 건강검진과 신체검사를 거친다. 휴대한 돈과 물건을 영치하고 샤워한 다음 수의를 입고, 구치소 내 규율 등 생활 안내를 받는다. 이후 수의 가슴에는 수인번호가 새겨진다.
생활 안내를 받고, 세면도구•모포•식기세트 등을 받은 뒤에는 방으로 가야 한다. 서울구치소에는 6.56㎡ 크기의 독거실과 6명 내외의 인원이 수감되는 12.01㎡(약 3.6평) 크기의 혼거실이 있다. 이 부회장 등은 독방을 배정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 이병철•이건희, 사카린 밀수•비자금에도 구속은 면해
창업 이래 79년만에 첫 총수 구속 '패닉'
1938년 삼성상회로 출발한 삼성그룹은 8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여러 차례 검찰 수사 등에 휘말렸으나 총수가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창업주인 이병철 초대 회장부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 부회장까지 총수 3대에 이르는 동안 여러 번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지만 한반도 구속까지 된 적은 없었다.
이 부회장의 조부인 이병철 전 회장은 1966년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위기에 몰렸지만 검찰에 불려가지는 않았다. 부친의 자리를 이어받은 이건희 회장 역시 수차례 의혹의 중심에 섰지만 구속된 적은 없다.
이건희 회장은 1995년 11월 대검 중수부가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할 당시 다른 대기업 총수와 마찬가지로 불려와 조사를 받았다.이후 불구속 기소돼 1996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가 이듬해 10월 사면받았다.
2008년 조준웅 특별검사팀이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등을 통한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을 수사했을 때도 이건희 회장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져 집행유예 판결을 받는 선에서 마무리됐고, 당시 전무였던 이재용 부회장은 아예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이처럼 삼성 총수 일가는 검찰과 여러 차례 악연을 맺었지만 대규모 변호인단을 동원한 치밀한 방어 전략으로 고비를 넘겨왔다. 그러나 변호인단의 '철통 방어'도 이번엔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구치소 신세를 지게 된 이 부회장은 개인적으로도 인생 최대의 시련을 맞았다.
■주요 외신들 긴급 타전…"한국 재계에 충격"
미국을 비롯한 주요 외신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 씨에게 거액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구속된 것을 서울발 긴급기사로 일제히 타전했다.
AFP통신은 오전 5시 44분 '삼성 후계자 부패수사에서 구속'이라는 짤막한 한 줄짜리 제목으로 가장 먼저 이 소식을 전했다. AFP는 이어진 기사에서 "새롭게 구성된 범죄혐의 사실과 추가로 수집된 증거자료 등을 종합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라는 한정석 영장전담판사의 발언을 전했다.
AP통신도 "한국 법원이 대규모 부패 스캔들에 연루돼 뇌물 등의 혐의를 받는 삼성 후계자의 구속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AP는 이재용 부회장이 이건희 삼성 회장의 외아들인 점을 언급하면서, 그의 구속이 한국 재계에 충격을 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월스트릿저널(WSJ)은 온라인판을 통해 삼성의 '사실상 리더'인 이 부회장이 한국의 정•재계를 뒤흔들고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를 낳은 '부패 스캔들'과 관련해 구속영장이 발부됐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박 대통령의 친구(최순실)와 관련된 회사에 삼성이 3,700만여 달러를 지불한 것과 관련해 이 부회장이 뇌물, 횡령, 위증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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