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 69돌 특별기획 시리즈 - 독립군 후손에게 듣는다
▶ <3>홍애시덕 선생의 장손 이민영 전 뉴욕광복회장
이민영 전 뉴욕광복회장이 조모 홍애시덕 선생이 독립운동가로 활동할 당시 자료들을 보여주고 있다.
홍애시덕 선생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백성이 있다. 깨어있는 백성이 돼야 한다.”
8일 퀸즈 코리아빌리지 라운지에서 만난 이민영 전 뉴욕광복회장은 조모인 홍애시덕 선생이 생전에 하던 말씀부터 떠올리며 말문을 열었다. 항일 운동가이자 민족주의자였던 이명원, 홍애시덕 부부의 장손인 이 전 회장은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와 함께 평생을 독립만 생각하신 분으로 일제 치하에서 여성 계몽운동에도 앞장섰다”고 힘주어 말했다.
실제 홍애시덕 선생은 1912년 이화학당의 교사로 재직하면서 여성계몽과 문맹퇴치운동을 통해 애국정신을 고취했으며 3.1 독립운동에 앞장선 유관순 열사와 함께 비밀결사 여성동지회를 조직, 여성운동과 민족운동을 펼쳤다.
“할머니가 늘 바쁘셨지만 늘 집 근처 정동교회에 데리고 가셔서 공부하게 시키셨어요. 일제 치하 속에 나라 없는 삶을 사셨던 할머니는 늘 ‘나라가 없으면 상갓집 개만도 못 하다’라는 말을 하시며 배우고 깨어있어야 한다고 하셨죠.”
홍애시덕 선생은 1920년에는 김활란 여사와 7인 전도대를 조직하고 전국을 순회하며 계몽운동을 펴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 미국 테네시 내쉬빌 스칼렛 신학대학을 졸업한 홍애시덕 선생은 한국인 최초의 여성목사가 된 인물로 YWCA연합회장으로 독립운동에 공을 세운 공로로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과 1977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추서 받았다.
이 전 회장의 조부 이명원 선생은 1907년 궁내 부지사를 지냈으며, 3·1 독립운동 시기에는 월남 이상재 선생의 비서역할을 했다. 이후 YMCA를 통해 항일운동을 펼치며 정동교회, 휘문고, 경신고, 배재고 등 한국내 교회와 학교의 건축가로도 활동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 절대 울지 말라고 말하시던 게 기억이 납니다. 늘 자신보다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던 모습을 떠오르면 자랑스럽습니다. 일제의 폭압 속 나라 없던 슬픔과 6· 25전쟁 직후 폐허가 돼 가난한 나라였던 대한민국을 떠올리며 모든 국민들이 일치단결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경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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