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타임스, 한인 홍윤희씨 사연 대서특필 인민군 탈출해 ‘정보’ 제공하고도 옥살이
‘반역자에서 애국자로’뉴욕타임스가 한국전쟁 중 인민군에서 탈출해 국군에 정보를 제공하고도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재미 한인 홍윤희(83·사진)의 기구한 사연을 대서특필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4일자 A섹션 5면 탑기사로 “한때 반역자로 몰려 징역까지 산 홍윤희씨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고, 애국자의 반열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홍윤희씨는 ‘한국전쟁 당시 국군에서 탈영해 인민군에 입대한 혐의(국방경비법 위반)’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무기징역을 거쳐 징역 5년으로 감형돼 옥살이를 했다. 그러나 62년만인 지난해 2월 청구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현재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홍씨의 기구한 운명은 6.25 발발 직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몰래 서울을 빠져나간 후 한강다리마저 폭파해 수많은 서울시민이 고립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육군 하사였던 그 역시 서울에 갇혀버린 것이다.
북한군이 진주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는 지하 공산당원이었던 친구의 제안으로 북한군에 자원해 전선에 투입되면 국군에 귀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자신이 당시 북한 부수상 홍명희의 동생이라는 거짓말로 북한군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해 8월 북한군의 압도적인 우세속에 전선이 부산 김해 일원으로 좁혀졌을 때 그는 김일성이 9월 초 총공세를 통해 전쟁을 끝내려 한다는 정보를 얻게 됐다. 8월31일 밤 몰래 빠져나온 그는 이튿날 아침 국군에 귀순, ‘중요한 정보’가 있다고 알렸다. 그리고 미군 정보장교에게 ‘인민군 총공세’ 계획을 전달했다.
그러나 9월11일 전 소속 부대에 복귀한 그는 모진 시련을 맞게 된다. 헌병대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 취조 끝에 간첩죄로 군사재판에 회부된 것이다. 전쟁 중 즉결 처형당할 수도 있는 위기에서 다행히 안면 있는 변호인의 도움으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그는 5년을 복역하고 1955년 풀려난 뒤 1973년 미국으로 이민했다.
뉴욕타임스는 홍씨의 무죄는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면서 “난 지난 63년간 반역자라는 오명을 쓰고 살아왔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나라를 도왔다는 진실을 입증할 것”이라는 그의 다짐을 전했다.
홍씨는 “수천장의 전쟁포로 문서들을 확인했지만 63년 전 당시 전선에서 빠져나와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면서 “당시 유엔군을 구한 것은 나라고 확신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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