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헤이그 전 미국 국무장관이 20일 새벽 숨졌다. 향년 85세.
고인은 지난달 말부터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소재 존스홉킨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유족들은 고인이 감염에 따른 합병증으로 숨졌다고 전했다.
4성 장군 출신인 고인은 로널드 레이건 정부 출범 당시 초대 국무장관직을 역임하며 1980년대 초반 역동의 한미관계를 조율해 왔다.
최근 공개된 기밀해제된 미 국무부 문서에 따르면 당시 전두환 대통령을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 직후 첫 외국정상으로 미국에 초청했을 때 한국 정부가 미국의 정치적 지지 문안을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포함시키려 했으나 고인의 거부로 무산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미국의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를 1947년에 졸업한 뒤 군 생활을 시작한 고인은 6.25 전쟁 때는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의 참모를 지내며 직접 참전하기도 하는 등 한국과의 인연이 적지 않다.
고인은 리처드 닉슨 정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거치며 닉슨 당시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고, 워터게이트 사건이 발생한 뒤 백악관 비서실장직을 맡으며 사태 수습을 주도하기도 했다.
고인은 1974년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설득한 주역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후 후임인 제럴드 포드 대통령 시절 유럽주둔 미군 사령관 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돼 1970년대 말까지 군 생활을 계속했다.
미국 사람들에게는 국무장관 재직 시절 발생한 레이건 대통령 저격 사건 직후 고인이 백악관 기자들 앞에 나와 부통령의 귀환을 기다리면서, 지금으로서는 내가 백악관을 통제하고 있다고 밝힌 언급이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대통령 유고시 권력승계 서열 4위였던 당시 그의 언급은 과도한 권력집착 성향을 보여주는 부적절한 언급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닉슨, 포드, 레이건 등 3개 공화당 행정부 시절 고위직을 연임했던 고인은 1988년 대선 당시 공화당 후보 경선에 출마하며 대권도전에 나서기도 했으나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고인의 뒤를 이어 레이건 행정부 당시 국무장관직을 지낸 조지 슐츠 전 장관은 고인은 애국자 중의 애국자라고 애도했다.
(워싱턴=연합뉴스) 황재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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