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3개 에미상과 4개 골든글로브를 수상한 HBO 미니시리즈 ‘존 애덤스’에 인상 깊은 장면이 있다. 1800년에 2대 대통령 애덤스가 아직 건축 중인 백악관에 처음으로 발을 들일 때 황량한 벌판에서 무표정한 노예들이 백악관을 짓다가 잠시 일을 멈추고 멍하니 쳐다보는 광경이다. 언젠가 자기처럼 생긴 사람이 주인으로 들어설 것이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버락 오마바 대통령의 취임식을 보면서 실로 감회에 젖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희망과 긍지의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왜 233년이나 걸린 것일까. 미국의 건국 과정을 돌이켜보면 반드시 광야에서 방황할 수 밖에 없었는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독립선언문에 담겨있듯이 미국의 건국 이념은 다름 아닌 자유와 평등이라는 숭고한 이상이었다. 흔히 건국 아버지들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선언했을 때 시대적 무지에 얽매여 흑인들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지만 역사서와 그들의 편지, 일기 등을 읽을수록 그런 구실을 용납하기 어렵다.
워싱턴, 제퍼슨, 애덤스, 매디슨 등 독립과 제헌을 이끈 지도자들은 성장할 때부터 존 로크 등 계몽주의시대 철학에 심취해 서민들과 달리 계몽된 사람들이었다. 제퍼슨은 “자유는 하나님의 선물로 이를 침해하는 것은 그의 분노를 일으킬 수 밖에 없다”며 “하나님이 공정하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조국을 위해 몸이 떨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제퍼슨은 죽을 때까지 100명 이상의 노예를 거느렸다. 1850년까지 미국 대통령을 지낸 12명 가운데 애덤스 부자를 제외한 10명이 모두 노예를 소유한 사람들이었다.
미국의 건국 과정을 너무 냉소적으로 보는 것도 아마 잘못된 시각일 것이다. 인간사를 살펴보면 사고를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 같다. 특히 서로 상반되는 구시대와 신시대의 사상이 섞여 공존하는 전환기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독립선언문에 담긴 이상은 그저 위선에 그치지 않았다. 그 때까지 북부를 포함한 미국 전역에서 성행하고 있던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정치적 운동이 처음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됐다.
노예소유주였던 벤자민 프랭클린이 1774년에 미국 최초의 노예제도 반대 단체를 결성했고 1804년까지 8개주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됐다. 1789년 제정법은 중서부 등 독립 전쟁에서 얻은 새 영토에서 노예소유를 금지했다. 남부에서도 점진적으로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대두했다.
물론 역사는 그렇지 않았다. 더 편협한 주정부 지도자들이 장악한 남부 지역이 미국 정치에서 우세해지면서 건국 지도자들이 단결의 이름으로 타협의 희생물을 삼았던 노예제도는 후대에 물려준 과제가 되었다.
오바마가 취임연설에서 건국 아버지들을 거듭 되돌아본 것도 그들의 이념이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을 가능케 했고 자신의 취임을 건국 이념의 완성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단 남북전쟁에서 62만명의 피가 뿌려지고 그 후로도 100년에 걸친 투쟁 끝에 제퍼슨의 약속이 마침내 이뤄진 순간이었다.
우정아
외신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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