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 잡는날 꿈꾸며 찬 새벽바람 이겨내죠”
새벽 5시. 자명종 소리에 고종문 씨(50, VA 버크 거주)는 피곤한 눈을 뜬다. 여명의 바람을 맞으며 그가 달려가는 곳은 버지니아의 뉴잉턴 거버먼트 센터 주차장. 스쿨버스에 오르면 하루가 시작된다.
그의 직함은 ‘차장’(Attendant). 운전기사 대신 학생들을 돌보는 직책이다. 그의 ‘손님’들은 대부분이 장애학생들. 학생들이 안전하게 등하교하고 학부모들 손에 넘겨지기까지 그는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학생들을 다시 귀가시키고 난 오후 4시30분이 돼야 그의 일과는 온전히 끝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문득 “내가 지금 올바른 길을 가고 있나”라고 되묻는다.
2006년 7월. 불과 1년6개월 전만 해도 고씨가 ‘버스 차장’이 되리라는 생각은 아무도 못했다. 한국에서 미 8군 군무원으로 20여년 근무하며 한때는 ‘잘 나가던’ 그였다. 2남1녀 아이들이 커가며 고민은 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래, 아이들을 넓은 세상에서 키워보자”고 결심했다.
인터넷을 뒤져 버지니아를 그의 가족들이 새로운 삶을 살아갈 신천지로 정했다. “인척도, 지인도 없는 곳입니다. 어차피 새 세상인데 두려움이 어디 있겠습니까?”
미국에 오자말자 그는 신문을 뒤져 직장을 찾았다. 먼저 스쿨버스 운전기사 모집광고를 보고 찾아가 최종 합격했다. 그러나 미 체류기간이 2년이 돼야 자격이 주어진다는 답이 돌아왔다. Jiffy Lube, 우체국의 시즌 잡, 소방서 등등 사람을 구하는 데마다 원서를 내고 찾아가 자신을 알렸다. 하지만 영구 직장은 아니었다.
수영장 피트니스 클럽에서는 자원봉사를 하다 수영장 측의 권유로 라이프 가드와 강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해군 하사관으로 복무시 배운 수영 실력과 적십자사 인명구조원 자격증, 수상안전 강사 및 생활체육 지도자 자격증 등이 큰 도움이 돼 현재는 매주 수요일 저녁 수영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사랑종합학교에 등록, 전기 매스터 자격증을 2차례 낙방한 후 합격하기도 했다. 웬만한 실력을 갖춘 경력자도 어렵다는 자격증이다. “빨리 이민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하루 몇 시간만 자면서 일하고 공부했습니다.”
원래 붙임성 좋고 씩씩한 성격이기에 고씨는 힘든 줄 몰랐다. 그러나 가족의 생계와 교육을 책임진 그에 미래는 불안하기만 했다. 아버지의 ‘불안정한’ 직장을 눈치 챈 아들은 주말 마다 아르바이트를 자청했다. 부인은 훼어팩스 카운티에서 운영하는 퓨처 트레이닝 센터의 문을 두들겼다.
“그 녀석이 지 아버지가 딱해보였는지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그러면서도 힘들다는 소리 한번 안 해요. 그래도 공부도 잘 하고 잘 적응해줘 너무 고맙고 대견스러워요.”
자식들 이야기가 나오자 고씨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린다.
지난해 2월 마침 학교 측에서 스쿨버스 어텐던트는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다. 그는 시간당 17달러의 임금에 보험과 베네핏 등이 좋아 응했다. 무엇보다 2년 거주 기한을 채우면 운전기사로 정식 채용된다는 조건이 마음에 들었다.
새벽바람을 맞으며 주에 40시간씩 일하다 힘들면 그는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자전거 타기와 산책, 수영에 매일 아침마다 출근 전에 30분씩 오체투지를 한다.
“오체투지를 하면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두통이 사라집니다. 종교행위가 아니라 정신과 몸 건강에 아주 좋습니다.”
올해 고씨의 1차 희망은 정식 운전기사가 되는 것. 안정된 직업에 베네핏이 좋고 노후까지 보장된다. 이민 초년생 고씨에 노란 스쿨버스는 세상을 향해 푸른 날개를 활짝 펴는 청연이나 다름없다. 기회가 되면 그는 한국에서의 전공을 살려 컴퓨터 보안 업무에도 도전해보려 한다.
2009년은 그에게 시련을 끝내고 희망을 향해 줄달음치는 한해다. 그는 “꿈을 놓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진다”면서 “꿈을 갖고 강한 마음을 먹으면 무엇이든 새로운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다”며 운전대를 힘차게 잡았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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