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탁월한 중국 공산당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는 주은래는 70년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서양 역사에 끼친 영향에 대해 말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아직 뭐라 말하기 너무 이르다”고 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역사적 사건의 진면목을 파악하는 것은 200년이 지나도 어려운 일임을 말해준다.
미 역사상 최악의 경제 위기였던 1930년대의 대공황의 원인과 결과를 놓고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논쟁도 그 한 예다. 리버럴 측은 대공황은 자유방임주의의 필연적 귀결로 사망 일보직전까지 갔던 자본주의가 ‘뉴딜’이라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강력한 시장 개입 정책으로 겨우 살아났다고 본다. 반면 고전주의 등 비판론자들은 인위적인 신용 팽창 등 정부의 개입이 대공황을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악화시켰다고 주장한다.
호황과 불황의 반복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1920년대의 호황과 1930년대의 불황이 과거와 달랐던 점은 1913년 미국의 사실상 중앙은행인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가 생긴 후 처음 발생한 경기 사이클이라는 데 있다.
1907년 뉴욕 증시는 1년 새 절반으로 폭락하면서 미 금융 시장은 마비상태에 빠졌다. 미국 경제가 파탄 나기 직전이라는 위기감이 도는 가운데 JP 모건은 거액의 자기 돈을 내놓고 다른 은행가들을 설득시켜 825만 달러의 구제 금융 기금을 마련했다. 거기다 존 D 록펠러가 1,000만 달러를 보태 겨우 위기를 넘겼다.
이번은 개개인들의 노력으로 미국 경제가 숨을 쉬게 됐지만 이런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 기구의 설립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져 FRB가 태어나게 됐다. 결국 FRB는 ‘1907년 패닉’의 자식인 셈이다.
1918년 제1차 대전이 끝나자 불황이 찾아왔다. 1919년 좀 회복되는 듯하다 1921년 다시 경기가 악화하자 FRB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려는 듯 돈을 마구 풀기 시작했다. 넘치는 돈은 실물 경제를 돕기도 했지만 증시와 부동산으로 흘러 들어가 전형적인 ‘자산 버블’을 일으켰다. 이것이 터지면서 대공황이 시작됐음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전례 없는 경제 위기 속에 취임한 루즈벨트는 “행동”과 “뉴딜”을 부르짖었지만 뚜렷한 경제 철학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스스로 말했듯이 “이것저것 해 봐 효과가 없는 것은 중단하고 있는 것은 계속하자”는 실용주의가 ‘뉴딜’의 핵심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용과 성과도 뒤죽박죽이었다. 뉴딜 중 성공적으로 꼽히는 작품은 테네시 강 개발(TVA)이다. 테네시 강을 막아 수력 발전으로 주변 농촌에 전기를 공급하고 수자원을 관리하자는 이 프로그램은 개발 계획의 모델이 된다.
반면 최악의 정책의 하나로 꼽히는 것에 돼지 600만 마리 도살 사건이 있다. 당시 미국 농촌은 낮은 농산물 가격으로 심한 불경기를 겪고 있었다. 가격을 올려 농부들을 돕는다고 애꿎은 돼지들을 잡는가 하면 1,000만 에이커에 달하는 곡물을 갈아엎고 과일을 그대로 썩게 했다. 도시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있는데 정부가 식량을 폐기 처분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균형 예산을 고집하며 세금을 올리고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며 노조의 힘을 키운 것도 결과적으로 경기 회복을 어렵게 했다. 가처분 소득이 줄어든 부유층이 지출을 줄인데다 고임금을 고집하는 노조 때문에 기업이 신규 채용과 투자를 꺼렸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주말 아이젠하워 이후 최대 규모의 토목 공사를 포함한 ‘신 뉴딜’을 내놓았다. 사회 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통해 일자리도 늘리고 장기적으로 미국 비즈니스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생각이다. 그와 함께 고소득층에 대한 중과세와 노조 발언권 강화 지지 등 선거 공약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정부 정책은 양쪽으로 날 선 칼이다. 잘 쓰면 위기에 빠진 경제를 살릴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이를 더 망칠 수도 있다. 루즈벨트 정책의 공과 과에 대한 세심한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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