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정부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구제 금융을 ‘구걸’하는 신세이면서도 자신이 받는 수천만달러의 연봉의 당위성을 강변하던 자동차 빅3 최고경영자들이 태도를 360도 바꿔 연봉 1달러만 받고 회사회생을 위해 백의종군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빅3 CEO들의 이런 선언에 시장은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이들의 움직임에 곱지않은 시선도 적지 않다. 지난달 18일 연방의회 1차 청문회에서 이들이 보였던 태도 때문이다. CEO 연봉 1달러의 효시는 지난 1970년대 말 망해가던 크라이슬러 회생의 책임을 맡았던 리 아이아코카.
구제금융 청문회에서 의원들이 아이아코카 회장의 전례를 들면서 이를 따라할 의사가 없느냐고 묻자 빅3 CEO들은 “현재의 연봉은 적절하다”고 답변해 여론의 빈축을 샀다. 단 2주 사이에 이들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을 리는 없고, 구제 금융을 받으려면 호의적 여론 조성이 필요하다는 계산에서 마지못해 연봉 1달러 선언을 한 것으로 보이다.
1달러 연봉의 원조인 크라이슬러의 아이아코카 회장은 1978년 쓰러져가던 크라이슬러 CEO를 맡으면서 임원들을 해고하고 노조원들의 급여 및 복지 혜택을 축소하는 등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연봉 1달러만 받겠다고 선언했다. 아이아코카는 이런 결단과 정부의 도움으로 크라이슬러를 다시 살렸다.
이후 CEO 연봉 1달러는 최고경영자의 자기희생과 뼈를 깎는 자구노력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탐욕스런 연봉과 보너스로 지탄받는 CEO들이 많은 가운데서도 연봉 1달러를 선언하는 CEO들이 적지 않다.
대부분은 어려움에 빠진 회사를 살리기 위해 고통을 같이 떠안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지만 잘 나가는 대기업 경영자가 1달러 연봉을 받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애플사의 CEO로 복귀한 후 10년 넘게 1달러 연봉을 받고 있는 스티브 잡스이다. 또 얼마 전에는 구글의 CEO와 공동창업자들이 보너스나 스톡옵션 없이 순수하게 연봉 1달러만 받겠다고 밝혀 신선한 충격을 던져줬다. 이밖에 대표적인 유기농 식품업체로 선풍적 인기를 얻고 있는 홀 푸즈의 존 매키 CEO는 1달러 연봉을 발표하면서 “돈 때문이 아니라 이토록 대단한 업체의 CEO를 맡고 있다는 자부심과 홀 푸즈를 통해 좀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열정 때문에 일한다”고 말해 회사와 자신의 이미지를 동시에 높이기도 했다.
최고 경영자의 연봉 1달러 선언은 기업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 아이아코카 경우를 근로자들 고통에 동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면 잘 나가는 기업 CEO들의 1달러는 조금 의미가 다르다. 잡스나 구글 창업자들이 던지고자 한 메시지는 “주주들이 번 만큼만 나도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봉 1달러 선언에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지 메이킹을 하면서 챙길 것은 다 챙긴다는 비판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지난 해 야후 회장에서 물러 난 테리 시멜. 그는 경영난 타개를 위해 백의종군하겠다며 연봉은 1달러만 받았으나 물러난 해에 받은 보수는 보너스와 스톡옵션을 포함해 총 7,170만달러에 달했다. 이러니 ‘눈가림용’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빅3 CEO들의 연봉 1달러 선언이 그들의 자구노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볼일이다. 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은 놓친 것 같다. 자발적인 선택과 떠밀려 마지못해 하는 것 같은 행위는 진정성에서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시기가 중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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