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다. 라틴어로 ‘지혜로운 인간’이란 뜻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이는 이상이지 현실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로마 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은 “역사는 인류가 저지른 범죄와 어리석음, 재난의 기록에 불과하다”는 말을 남겼다.
인종에 대한 편견은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겉모습이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종은 세계 어디서나 침략과 학살, 차별의 대상이 돼 왔다. 이런 인간의 아둔함의 가장 큰 희생자는 흑인이다. 힘없고 피부가 검다는 이유만으로 인류 문명이 생긴 이래 수 천 년 동안 노예 노릇을 해야 했다.
15세기 이후 서양이 세계로 진출하면서 흑인 노예를 잡아다 혹사시킨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흑인을 노예로 삼는 것이 제도화 됐다. 서양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잡아간 흑인 수는 1,2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그 이전 아랍 상인들에 의해 끌려간 흑인 노예 수도 이와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부색이 다른 타인종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아프리카 인들끼리도 부족이 다르면 잡아다 노예로 부리는 것이 오랜 관습이었다.
과거에는 엉터리 이론을 가지고 흑인이 왜 열등하며 따라서 노예로 적합한지를 정당화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지금은 과학적으로 피부색이 지능을 비롯 인간의 어떤 능력과도 무관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는데도 아직까지 흑인들에 대한 편견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선입견이 정치적으로 나타난 것이 소위 ‘브래들리 효과’다. 1982년 가주 주지사 선거에 나온 탐 브래들리가 여론 조사에서는 이기고 막상 선거에서 지자 사람들이 여론 조사에 응할 때는 인종 편견이 없는 척 하다 막상 투표장에서는 백인한테 표를 던지는 현상을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올 대선에서도 버락 오바마가 여론 조사에서 줄곧 우위를 달리자 일부 분석가들은 ‘브래들리 효과’를 들먹이며 6% 정도 차이는 이를 감안할 때 사실상 동률이나 마찬가지라며 존 매케인의 승리를 점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개표 결과가 여론 조사와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브래들리 효과’는 허구임이 밝혀졌다. 이와 함께 부시의 낮은 인기와 매케인의 오락가락 하는 캠페인, 금융 위기로 사실상 정정당당하게는 승리를 기약할 수 없게 된 공화당 일각의 마지막 희망도 결국 물거품으로 끝나고 말았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기자들이 소련 공산당 대변인인 겐나디 게라시모프에게 1968년 ‘프라하의 봄’과의 차이를 말해달라고 묻자 그는 “21년”이라고 답했다. 브래들리가 출마한 지 26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이에 목을 매다는 것은 미국 사회가 그 동안 얼마나 변했는지에 대한 무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오바마의 당선과 함께 이제 브래들리와는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