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 셔먼옥스의 한 소방서. 선거 때마다 그 지역의 투표소로 이용되는 곳이다. 아침 7시 투표소 개장을 앞두고 소방서에 도착한 한 자원봉사자는 깜짝 놀랐다.
아직 어둠도 덜 가신 이른 시간에 투표하려고 모인 사람들이 블록 하나를 다 돌 정도로 줄을 지어 서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지난 주말 뉴스에서 조기투표의 긴 행렬을 본 사람들, 이번 선거 투표율은 거의 사상최고일 것이라는 보도를 들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나가 덜 기다리고 투표하자는 생각이었는데,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거기서 거기였던 것이었다.
“모두가 출근하기 전에 투표를 하려는 사람들이었어요. 7시 좀 지나서는 줄을 선 사람들이 수백명에 달하더군요”
평소 출근 차량들로 붐비는 대로에 투표하려는 사람들의 차량까지 몰려들면서 그 일대는 두세시간 동안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그 자원봉사자는 전했다.
“그래도 이게 나아요. 어느 해 선거에는 하루 종일 기다려도 투표하러 오는 사람이 30명밖에 안 되더군요. 이렇게 투표하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야 일하는 재미도 나지요”
미국 역사의 새 장을 연 이번 선거는 유권자들이 모처럼 투표하는 기쁨을 누린 선거이기도 하다. 불꽃 튀던 대선열기가 유권자들의 투표하고 싶은 욕구를 한껏 자극한 덕분이다. 국민으로서의 의무가 아니라 꼭 하고 싶어서 투표를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셔먼옥스의 한 20대 백인 여성은 “혹시 투표를 못할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왔다”고 했다. 몇 달 전 결혼을 해서 성이 바뀐 때문이었다.
“지금 이름과 유권자 명부의 이름이 다른 거예요. 그래서 혹시라도 문제가 될 까봐 결혼 증명서며 이전의 운전면허까지 다 들고 왔어요”
유권자들의 투표 열의가 이러하니 투표소 앞의 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평소 같으면 5분을 못 기다리는 사람들이 투표소 앞에서 한두시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기다리는 것이 전국적 현상이었다. 운이 좋아서 기다리지 않고 투표를 하면 오히려 싱겁게 느끼는 분위기였다.
가장 기다림이 길었던 지역 중 하나는 버지니아의 노폭 지역. 이 지역 유권자들은 심하게는 5시간씩 기다려서 투표를 했다. 등록 유권자들의 50% 정도가 오전에 한꺼번에 투표소로 몰린 때문이었다. 아침 10시30분에 늘어선 줄이 오후 3시30분이 되어도 없어지지 않더라고 한 주민은 전했다.
줄이 워낙 길다보니 텍사스, 미주리, 미시시피, 아칸소 등지에서는 가짜 이메일과 텍스트 메시지가 나돌아 혼란을 빚기도 했다. “줄이 너무 길어서 오바마 지지자들은 내일 11월5일에 투표해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공화당을 지지하는 누군가의 방해 공작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선거가 끝났다. 이제 미국은 새 시대를 맞았다. 전국의 유권자들이 만들어낸 새 시대이다. CNN 뉴스에 나온 한 여성은 한시간 30분 기다려 투표한 후 “내 생애 최고의 한시간 30분”이라며 감격스러워 했다. 투표의 감격이 미국민들 모두에게 ‘우리 생애 최고의 4년’으로 연결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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