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욱은 잠깐 잠깐 넓은 창을 통해서 보이는 회색 건물들과 물결처럼 흘러가는 차의 행렬을 바라봤다. 조금씩 흰 눈이 뿌리기 시작했다. 욱은 다시 손님의 노란 머리를 빠른 속도로 가지런히 잘라가고 있었다. 떨어진 머리카락이 차근히 욱의 슬리퍼를 덮고 있었다. 불빛에 반짝이는 거울 끝에 매달린 새장 속의 파랑새 한 마리가 작은 소리로 지저귀었다. 욱의 찰칵거리는 가위 소리에 응답하듯이.
욱은 춘천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캠프 케이시 근처에서 카바레를 운영하셨다. 아버지는 형과 누나와 함께 인천에서 산다고 했다. 욱의 아버지는 인천 세무서에서 일했고 형과 누나가 서울서 대학을 다니기 때문에 욱의 집은 뭉칠 수가 없다고 어머니는 항시 말씀하셨다. 그래도 그렇지 욱은 아버지나 형과 누나를 생전 본적이 없다.
욱이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한 반 아이들은 욱이와 놀아주지를 않았다. 늘 집에서 자기를 봐주는 아줌마도 어머니가 집에 없을 땐 욱을 깜둥아 라고 불렀다. 욱이 스스로도 자기피부가 너무 까매서 싫었다. 머리는 빗질을 할 수 없도록 엉켜있었다. 어머니는 보라는 듯이 비싼 옷을 사 입히셨다. 그래도 아이들은 놀려댔다. 욱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미웠다. 어떻게 자기를 이렇게 놀림받도록 낳았을까 하고.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는 슬픔과 외로움으로 이어지는 고통스런 지옥이었다. 그래서 욱은 책방에서 만화와 세계문고를 뒤적이게 됐고 책은 유일한 친구가 됐다. 덕분에 욱은 늘 좋은 성적을 올렸다. 괴로움이 몰려오면 소양강 댐에 갔다. 때로는 강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아줌마가 학교로 달려왔다. 아줌마의 얼굴은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눈치였다. 아줌마는 욱이 알아듣기 쉽게 또박또박 어머니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고 2, 3년은 감옥소에 있게 될 것이라고 알렸다. 그리고 인천의 아버지집 주소와 아버지 이름을 적은 쪽지를 전해 주었다. 꽁꽁 묶은 작은 돈 꾸러미와 짐 보따리도 함께 건네주었다.
욱은 짐작이 갔다. 미군 부대가 이동을 하고, 어머니가 곗돈을 막지 못했을 거라고. 어머니가 너무 불쌍했다. 욱은 경찰서 유치장으로 달려갔다. 간신히 면회가 됐다. 초췌한 어머니 얼굴을 대하니 어머니를 향한 욱의 분노는 사그라지고 눈물이 쏟아졌다. 어머니는 한참동안 입을 떼지 못하셨다. 긴 한숨을 쉬신 후에, 욱의 친아버지가 미국 동부 노폭에 살고 있다고, 그의 이름은 존 잭슨 중령이라고 간신히 말을 맺었다. 어머니는 머리를 숙였다.
욱은 인천으로 달려갔다. 부둣가를 몇 주일이나 헤맨 끝에 미국으로 가는 배를 찾았다. 밀항을 하는 것이다. 욱에게 행운이 왔다. 브라질 국적 상선의 한국인 선장이 하우스 보이를 구했다. 16살의 소년으로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었지만. 선장의 도움으로 6개월만에 욱은 샌프란시스코 항에 도착했다. 욱은 시가지와 부둣가를 방황했다. 그래도 가슴속에 희망과 평온이 왔다. 흑인 어린이들이 수시로 형제라고 주먹으로 인사를 하고 갔다. 길가에서 자고 막일을 했다. 윌슨 가의 이발소 입구에는 지하에서 뿜어내는 따뜻한 스팀이 올라왔다. 아침이 되면 차가운 바다바람이 살을 에었다. 이발소 주인 흑인 아저씨가 나무라지 않고 욱을 깨웠다. 그리고 이발소 안의 푹신한 의자에 잠을 자게 했다. 벙어리로 안 주인은 손짓으로 욱에게 청소며 차근히 이발기계 소독하는 일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의 곱술 머리를 깎아 주었다. 파랑새가 구슬프게 울었다.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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