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신호가 켜졌다. 앞차가 움직였고, 나도 천천히 뒤따랐다. 그때였다. 자전거를 탄 초등학생 한 아이가 신호를 무시한 채 갑자기 내 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둔탁한 충격이 전해졌다. 아이는 길 건너편으로 튕겨 나갔다.
‘내가 아이를….’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차를 세우고 거의 달려가듯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는 길가에 앉아 있었고, 무릎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다행히 숨은 쉬고 있었다. 그 사실 하나가 나를 간신히 붙들었다.
하지만 죄책감과 공포는 파도처럼 밀려왔다. 평생 처음 겪는 사고였다. 순간은 짧았지만, 내 안에서는 시간이 멈춘 듯 길게 늘어졌다.
그때 젊은 남녀 한 쌍이 다가왔다. 그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침착하게 아이의 상태를 살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아버지 전화번호를 알려줄래?”
아이는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부모님한테 전화하면 저 혼나요. 전화하지 마세요. 저 감옥 가기 싫어요.”
그 말은 어린 마음의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었다.
그 청년은 나를 향해 분명하게 말했다.“선생님 잘못이 아닙니다. 아이가 빨간 신호에 갑자기 뛰어 들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 말 한 마디는 무너져 내리던 내 마음을 붙드는 기둥이 되었다.
청년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911에 전화를 했다. 경찰이 와서 증언을 기록했고, 앰뷸런스가 도착해 아이를 태웠다. 아이는 병원에 가기 싫다고 했지만, 두 사람은 혹시 모를 후유증을 걱정하며 아이를 설득했다. 그들의 태도에는 흥분도, 판단도 없었다. 오직 책임감과 배려만이 있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저들은 어디를 가던 길이었을까. 어쩌면 중요한 약속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가던 길을 멈추었다. 낯선 아이를 위해, 낯선 운전자를 위해.
나는 아이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지갑에서 백 달러를 꺼내 건넸다. 약이라도 사 바르라고 말했지만, 청년은 조용히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의 말에는 단호함이 있었지만, 따뜻함도 함께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돈을 다시 지갑에 넣었다. 아직도 나는 이 사회에서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사람임을 깨달았다.
모든 상황이 정리되고, 경찰도 떠나고, 앰뷸런스도 사라졌다. 두 사람은 마지막까지 나를 안심시키며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나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 그들에게 따뜻한 악수의 손길을 보냈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기들의 길로 떠났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하늘 위에 흰 구름 몇 점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세상은 여전히 고요했다. 그러나 내 안에서는 무엇인가가 달라져 있었다. 세상에는 모른 체 지나칠 수 있는 순간들이 많다. 그러나 그날, 나는 멈추어 선 두 사람을 보았다.
그들은 특별한 날개도, 빛나는 후광도 없었다. 그저 책임을 다하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그래서 더 빛났다. 천사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존재가 아니라, 타인의 위기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날 나는 배웠다. 그 이후로 오래도록 감사의 마음이 내 안에 머물고 있다.
세상은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그날 만난 두 사람 때문에 나는 이 세상이 아직 살 만하다고 믿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의 하늘은, 어쩌면 내 마음이 바뀐 빛이었을까. 보랏빛으로 조용히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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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웅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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