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위해 매일 세 끼를 차려내는 일은 결코 당연한 일상이 아니다. 하루 한 끼만 준비하려 해도 반찬 고민에 손길이 분주해지는데, 그것을 삼시 세끼로, 그것도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이어온다는 것은 삶의 상당 부분을 부엌이라는 좁은 공간에 저당 잡히는 것과 다름없다. 밥 세 끼가 생명을 유지하는 근간임을 모르는 이는 없지만, 그 정갈한 밥상이 차려지기까지 누군가의 정성과 고단함이 녹아있다는 사실은 종종 망각되곤 한다.
오늘날 가사 분담이 자연스러운 문화가 되었다고는 하나, 기성세대에게는 여전히 ‘아내가 밥을 하는 것’이 거스를 수 없는 관습처럼 남아 있다.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을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것은 따뜻한 노동이 아닌 고단한 의무가 되고, 감사가 아닌 무색무취한 일상이 된다. 평생 주는 밥을 먹으며 살아온 이들에게는 식탁 뒤에 숨겨진 체력적 소모와 마음의 고단함이 쉽게 체감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단순한 한 끼를 넘어 몸의 건강과 삶의 질을 좌우한다. 사람들은 좋은 식재료를 찾기 위해 원산지를 꼼꼼히 살피고 유기농에 열광하지만, 그 모든 선택의 이면에는 아내의 치열한 고민이 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농약은 덜 썼는지, 남편의 입맛에 맞을지, 아이의 건강에 해롭지는 않을지.' 하루 세 번, 이 보이지 않는 인지적 노동은 매일같이 반복된다.
세상이 변해 외식이 흔해졌어도 “오늘은 뭘 해 먹을까”라는 질문은 여전히 많은 아내의 몫으로 남아 있다. 가전제품이 육체적 노동의 시간을 줄여주었을지는 몰라도, 가족의 영양 상태를 고려해 반찬을 조합하고 맛을 맞추는 정신적 에너지는 오직 사람의 손과 머리에서만 나온다. 그것은 기계가 결코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영역이다. AI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이가 들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무게가 있다. ‘삼식이’라는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누군가의 자유로운 하루를 온전히 구속하는 말이다. 아내가 차려준 밥상에서 안락함을 느끼며 살아왔다면 그는 이미 큰 복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그 복을 당연한 권리라 착각하는 순간, 부부의 관계에는 소리 없는 균열이 시작된다.
딸을 둔 부모가 사위의 가부장적인 태도에 가슴 아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랑으로 시작한 결합이 ‘역할 분담'이라는 명목하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흘러갈 때, 가장 먼저 메마르는 것은 아내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라면 한 그릇으로 끼니를 대신하고, 때로는 남편이 직접 앞치마를 두르는 것은 단순히 아내의 일을 돕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내의 수고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는 존중의 표현이다. 과거에는 ‘남편을 위해 밥하는 것이 아내의 미덕’이라 했지만, 이제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일방적인 강요였는지 알고 있다.
아내가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할수록, 하루 세 끼를 꼿꼿이 요구하는 남편의 존재는 든든한 동반자가 아닌 버거운 짐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한식 정찬만을 고집하며 국물이 없으면 숟가락을 들지않고 세 끼를 요구하는 남편은 세상의 변화에 무심할 만큼 권위적이거나, 아내의 소리 없는 인내를 사랑이라 착각하며 사는 사람일 것이다.
아무리 요리에 능한 아내라도 매 순간 완벽한 식단을 내놓을 수는 없다. 대부분의 아내는 눈을 뜨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반찬 걱정으로 머릿속을 채운다. 그 고민의 무게를 남편이 나누어 갖는 날, 부부의 관계는 한결 가벼워지고 식탁 위의 공기는 비로소 진정한 온기를 띠게 될 것이다.
세 끼를 차려주는 아내의 밥상은 숭고한 사랑이다. 그러나 그 사랑은 남편의 깊은 존중 위에서만 비로소 오래도록 머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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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혁 패사디나,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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