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에 아무 거리낌 없이 떠있는 흰구름 송이를 바라보며 넓게 펼쳐진 잔디를 밟고 걷는 순간이다. 자꾸 두리번거리며 찾던 여우가 바로 눈앞에 어슬렁거리며 나타난 것이다. 반가웠다.
작년 봄이었다. 골프장 한 언덕 비스듬한 바위틈 작은 동굴 밖으로 빠끔히 얼굴을 내민 여우 새끼들의 까만 눈동자들이 우리들의 발자국에 놀라 움칠하며 몸을 숨긴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귀여운 아기 여우들을 찾곤 했지만 어디로 갔는지 통 보이지 않더니 어느날 깡마른 몸집에 온통 흙칠을 하고 한 마리가 나타났다. 배고픔이 역력한 여우는 발까지 절고 있는 품이 너무 불쌍해 보인다. 이날은 흠뻑 허기에서 벗어나 행복한 몸짓으로 숲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배고픔의 서러움을 잠시 생각해 본다. 배고픔이 어디 동물의 세계 뿐이겠는가.
나도 피난시절 배고픔을 경험했고 저 북한 어린이들, 아프리카 등지의 어린아이들의 깡마른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언제나 배고픔이 없는 풍족한 세상이 될는지. 세상보다 자연생태계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나무는 바람이 불거나 눈이 오거나 시비를 걸지않는다. 자기 있는 모습 그대로 서있다. 왜 그럴까. 뿌리가 깊기 때문일 것이다. 오직 순리대로 마음 편히 건강하게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의 비결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며 사는 것은 끊임없는 자연의 순환과 같은 것이다.
이민 초기에는 참으로 힘들고, 고달파서 울었고 또 외로워서도 울었다. 한두 번쯤은 자기를 돌아보면서 후회와 원망 그리고 자기의 어리석음에 대한 자기성찰의 기회를 가져보기도 하면서 서로 의지하며 삶을 유익하게 살 수 있는 상부상조하는 삶, 보기에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교황 바오로 2세가 임종할 즈음 마지막 한 말은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들도 행복하십시오”였다고 한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슬픔과 고독 그리고 후회가 가슴에 응어리지지 않고 행복했다고 고백하는 것은 한 순간에 일어난 감정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기를 바라는 신앙인의 긍정적인 태도의 결과일 것이다.
하늘에는 황혼이 묻어온다. 구름발 사이로 번져오고 있는 붉은 황혼은 서서히 어둠으로 변해간다. 인생이 백년도 버티기 어려운데 천만년 살 것 같이 타협할 줄 모르는 것이 우리 인생들이다. 우리의 삶은 순간순간마다 끝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 선택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순간의 선택들이 하나하나 모여 우리 인생의 모습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면서, 세월의 힘은 속이지 못해 얼굴엔 주름이 보이지만 나는 미련의 끈을 잡지않고 명쾌한 웃음을 가지려고 무던히 애쓰며 노력하려고 한다. 우리가 언제까지 젊게만 있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이젠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추억이 함께 가는 연기자로 남고 싶다.
유설자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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