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옥자는 비행기안이 너무 답답했다. 몇 줄 앞에서 아이가 경기가 들린 듯 악을 쓰며 울어댔다. 옥자는 자기도 저렇게 소리를 지르고 울고 싶었다. 너무 잔인했던 자기의 과거를 몽땅 버릴 수만 있다면 하고 고개를 저었다. 옆에 앉은 아줌마는 비행기가 인천 공항을 이륙하자마자 코를 골며 잠에 떨어졌다.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다시 잠들자 기내에는 다시금 적막이 왔다. 옥자는 창 가리개를 올렸다. 흰 구름들 사이에서 햇빛이 솟아나고 있었다. 아, 그렇다. 새로운 세계가 저 빛처럼 솟아오르는 것이다.
긴 항로를 접고 비행기는 하강하기 시작했다. 덜레스 공항은 조용했고, 사람들은 침착하게 입국 및 세관수속을 밟았다. 옥자는 가슴에 손을 얹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짐을 찾아서 긴 복도를 걸어 출구를 지날 때는 다리가 후들거려 숨을 돌려야 했다. 눈을 들었다. 해맑은 미소를 짖는 록은 손을 흔들었다. 옥자는 달려갔다. 록은 팔을 벌리고 옥자를 안아 올렸다. 그리고 뜨거운 키스를 했다. 옥자는 너무 행복했다. 일년만이 아닌가.
리버로드에 있는 록의 집에는 연로하신 록의 부모님이 옥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부부는 마치 자기 딸처럼 좋아라고 흥분하고 있었다. 집안은 온통 붉은 장미로 가득 찼고 코를 찌르는 향기가 넘쳤다. 넓은 거실과 방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옥자의 눈에는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영어학원 구석방에서 새우잠을 잤던 슬픈 생각이 스쳐갔다. 록이 영어강사로 부임해서 실수로 열어 봤던 청소물 저장 창고. 옥자가 청소를 끝내고 잠들었을 때 그녀를 깨운 무례를 내내 미안하게 생각한 록이었다. 록의 어머니가 록과 옥자의 방을 보여줬을 때 옥자는 하마터면 환성을 지를 뻔했다.
록은 공군에서 제대를 하고, 아메리칸 항공사에서 국내선을 운항하고 있었다. 옥자는 넓은 뒷 정원을 손질했다. 식기며 가구를 반짝반짝 닦았다. 부모님들은 입을 벌린 채로 옥자를 바라봤다. 옥자의 손으로 모종된 꽃과 나무들은 좋아라고 쑥쑥 자랐다. 옥자는 어려운 말은 피하고 미소로 말을 대신했고, 공손하고 부지런했다. 옷가지를 꿰매고, 빳빳하게 남편의 옷을 매만졌다. 음식은 요리학원에서 배운 대로 열심히 조리하고 예쁘게 상에 올렸다. 항상 걸어서 근처 식료품 가게에 가서 차근히 장보는 것을 스스로 배워 갔다. 남편은 사흘 비행하고 사흘 집에서 쉬었다. 집에서 쉴 때는 더욱 록의 부모님을 각별히 모셨다. 꿈같은 6개월의 세월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록이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예비역 소집영장을 들고 집에 들어왔다. 록은 이라크 전쟁에 소집된 것이다. 그는 이틀만에 비행기를 몰고 이라크로 떠나갔다. 옥자는 앞이 캄캄해졌다. 옥자의 엄마도 그랬다. 옥자를 외할머니댁에 떼어놓고 월남파병 간호원으로갔다. 그리고 영영 돌아오지 않으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외삼촌은 옥자를 직업학교에 입학시켜놓은 후에 다시는 찾아오지 않으셨다.
록의 부모님들도 상심이 되어 계속 폐렴 간염 기타 병환을 앓으시고 옥자는 두 분을 간호하느라 더욱 분주해졌다. 록으로부터 일절 소식이 끊겼다. 록의 부모님들은 일주일 간격으로 돌아가셨다. 옥자는 온갖 방법을 써서 요로에 진정서를 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어느 날 정복차림의 대령이 성조기를 손에 들고 문을 두드렸다. 옥자는 옷맵시를 가다듬고 문을 열었다. 대령은 정중히 모자를 벗고 록이 실종됐음을 알렸다. 옥자는 성조기를 받고 그 위에 얼굴을 파묻었다.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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