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타이어가 펑크났다. 주위는 어둡고 그 흔한 셀폰도 내겐 없고 전후좌우 걸어서 도움을 청하러 갈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트렁크를 열어 보았지만 남편 차를 가지고 온 탓에 어디에 연장과 스페어 타이어가 있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알았다 해도 단 한 번도 타이어를 교체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었으므로 난감했다. 하는 수 없이 비상등을 켜놓고 손을 흔들어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두가 바람처럼 달아날 뿐이었다.
그러길 20여 분, 차 한대가 와서 멎는데 보니 젊은 여자였다. 그녀에게 셀폰을 빌려서 남편에게 연락을 했지만 바로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아서 그녀에게 셀폰을 돌려주면서 얘기를 했더니 경찰에게 연락을 해주었다. 그러고도 그녀는 가지 않고 만나기로 약속된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설명을 하며 경찰이 올 때까지 나를 도와주어야 하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이제 그만 가보라는 내 말에도 아랑곳없이 그녀는 나를 도와 차 밑바닥에 숨어 있던 스페어 타이어 찾기에 애를 먹었고 타이어에 연결되어 있는 쇠줄을 빼내려 그녀는 웃옷을 벗고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올리고, 비온 후라 진흙탕인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 차 밑을 뒤졌다.
그렇게 갖은 고생 끝에 타이어를 꺼내긴 했는데 이번에는 펑크난 타이어를 빼내는 게 또 문제였다. 끄떡도 않는 볼트에 연장을 걸어 놓고 그 위에서 그녀가 발을 구르자 조금씩 돌아갔다. 그렇게 온 몸으로 6개의 볼트를 풀어 펑크난 타이어를 빼내고 거기에 스페어 타이어를 갖다 맞추는데 그것이 또 예상대로 맞지 않았다. 경험이 없고 힘이 없는 여성들이라서 겪은 필요 이상의 고생이었다. 그 악조건 속에서 불가능하게 보였던 타이어 교체가 그녀의 전적인 주관 하에 끝이 났다.
그녀는 지금 남자 친구와 약속이 있어 만나러 가는 길이다. 날은 어둡고 비가 와서 갓길은 진흙 속인데다 여자의 힘으로는 도울 수 없는 덩치 큰 밴의 타이어 교체문제다. 다른 사람처럼 그냥 스쳐지나가거나 셀폰 빌려주는 정도의 친절이었으면 충분했다. 거기에 경찰에게 연락을 해 놓았으니 미루고 가면 그 뿐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거기에서 친절을 토막 내지 않고 잘 차려 입은 옷에 진흙과 기름때를 묻혀가며 온 몸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친절 너머 사랑의 자리까지 들어갔던 것이다.
그녀는 20대 초반의 유태인 아가씨였다. 그들이 왜 소수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각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들로 살아 갈 수밖에 없는지 분명하게 보여준 한 사례였다. 그녀는 내게서 한 푼의 대가도 받아가지 않았지만 자신은 물론 조국과 민족의 가치를 한껏 올려놓았다. 러시아의 대 문호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서 모든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그들이 자기 자신을 걱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 친절은 상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중의 일부를 하는 것이고 사랑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의 모두를 상대를 위해 하는 것이다. 사랑의 바이러스는 감동이다.
전현자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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