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츠퍼’(chutzpah)란 단어는 부모를 살해한 뒤 고아가 됐다며 관용을 베풀어달라고 말하는 뻔뻔스러움을 칭한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꼭 그렇다. 그린스펀은 지난주 연방 재정적자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 그러나 그린스펀은 재정적자의 주 요인이 감세 때문인데도 감세 정책을 되돌리려는 노력에 반대했다. 대신 그는 감세 영구화를 추진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를 지지하는 반면 소셜 시큐리티 혜택을 줄이자고 주장했다.
그린스펀은 3년 전 의회 증언에서 감세를 주장했다. 감세하지 않으면 정부에 돈이 넘쳐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소셜 시큐리티 혜택을 줄이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켰다. 하지만 지금 정부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다행히 소셜 시큐리티 기금은 수입이 지출보다 많다. 적어도 2042년까지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시의 감세가 영구화하면 그 이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현재 소셜 시큐리티 기금이 안정돼 있는 것은 그린스펀이 1980년대 의회에 봉급수표에서 떼 가는 세금을 올리자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금은 부유층보다 중간 도는 저소득 주민들에게 부담을 많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납세자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소셜 시큐리티를 지켜내는 데 동의했다.
그린스펀은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소셜 시큐리티를 지키자고 했다. 그리고 흑자가 나자 감세를 하자고 했다. 그리고 적자가 심해지니 이젠 소셜 시큐리티 혜택을 줄이자고 하고 있다. 결국 서민들의 세금으로 부자들에게 유리한 감세 조치를 취하는 데 동의한 것이다. 말 그대로 “서민들의 세금을 올려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 주자”고 캠페인을 벌이는 것과 진배없다. 보수파들이 만일 이렇게 정직하게 주장하고 나선다면 아마 유권자들은 분개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3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감세는 재정적자를 부르고 재정적자는 정부지출을 줄이게 된다. 수십년 간 보수파들의 써 온 전략이다. 둘째, 보수파들은 소셜 시큐리티를 사유화하려 들것이다. 만일 오는 11월 대선에서 부시가 재선된다면 개인은퇴구좌의 사유화 공세가 가속화할 것이다. 틀림없이 이들은 소셜 시큐리티를 구제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사유화 캠페인을 전개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결국 은퇴구좌의 재정 상태만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셋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같이 비정치적이며 중립적인 기관이 보수파에 의해 정치기구로 변모한다. 이는 우리 정부체제에 있어서 보수파의 타락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비정치적인 기구를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는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예외일 수는 없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과학자, 예산 전문가, 정보분석가, 군 장교 등 프로페셔널들조차도 정부의 정책에 순응하지 않을 수 없도록 힘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린스펀은 이러한 압력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정당간 이견이나 알력에 개입하거나 한쪽 편을 드는 듯한 입장을 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린스펀이 이 기구를 파당적인 기구로 몰고 간다면 이 기구와 미국 전체를 배신하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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