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기로 가동되는 시계의 알람소리에 잠이 깨 방에 불을 켜고 TV뉴스를 본 후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샤워를 하고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과 우유를 꺼내 마신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을 떠난다. 자동차로 회사로 올 때까지 신호등의 지시를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이런 절차를 거쳐 회사에 도착, 책상위 컴퓨터를 켜고 하루의 업무를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도 이같은 과정을 거쳐 하루를 맞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14일 순식간에 미 동부 전체가 정전이 되면서 5,000만명이나 되는 사람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나 역시도 그날 겪은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그 때 겪은 불편함과 고통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일 오후 4시부터 회사에서 근무중 전기가 나간 후 이튿날 오전 8시40분께 다시 들어올 때까지 16시간동안 나의 일상생활은 꼼짝달싹할 수 없을 정도로 마비됐다.
그 날도 컴퓨터 앞에 일하다 전기가 느닷없이 나가면서 직장에서 귀가하는 길은 말할 것도 없고 집에 도착해서 다음날 직장에 다시 출근할 때까지 속수무책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우선 이날 회사에서 더 이상 일을 못하고 집을 가기 위해 거리에 나오면서부터 고생은 시작됐다. 지하철이 가동안돼 맨하탄에서부터 쏟아져 나오는 인파를 뚫고 신호등이 없는 거
리를 조마조마하며 운전을 해야 했다. 간신히 집에 오니 엘리베이터가 작동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깜깜한 비상구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되는 고통까지 겪어야 했다.
더구나 집이 20층이다 보니 끝까지 오르기가 힘이 들었다. 할 수 없이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들고 가까스로 어두컴컴한 계단을 걸어서 복도로 나왔다. 그곳 역시 깜깜 절벽이었다. 어둠을 가르고 겨우 집을 찾아 들어오니 전화와 셀룰라폰 두절로 그렇게 걱정되던 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려 ‘이젠 안심이구나’ 안도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왔는데 이게 또 웬일? 뻘뻘 흘린 비지땀을 씻으려 했더니 물까지 안나오는 것이었다. 먹는 물 겨우 반 갤론 정도로 목을 추기고 저녁밥도 못해먹었다. 96도나 되는 무더위에 흘린 땀으로 끈적끈적한 몸을 씻지도 못하고 겨우 촛불하나만 켜놓고 그대로 밤을 지샜다.
그러나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아무런 소용이 없어 무더위와 싸우다 보니 잠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
이른 아침 회사에 전화하니 밤새며 대기하던 편집국 식구들이 새벽에 불이 들어와 신문을 만들고 있었다. 출근 채비를 했으나 여전히 물이 안나와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세수 도구만 챙기고 그대로 회사로 향하였다. 물론 그 후 전기도 들어오고 물도 나오게 돼 그날 밤 퇴근하고부터는 모든 게 언제 그랬느냐는 듯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루가 채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정말 불편하고 고통스런 순간들이었다. 평소 그렇게 흔하게 쓰던 물, 방안을 환히 밝혀주던 전깃불, 언제든지 마음대로 켜고 보던 TV, 냉장고의 음식들, 마이크로웨이브, 에어컨, 선풍기,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등 물과 전기로 작동되는 모든 게 다 새롭고 신기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정상적인 생활의 편리함과 안정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다시 한번 절감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인간이 만든 문명의 이기라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으면 그 순간부터 무용지물이라는 사실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므로 아끼고 보호하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 예방에 더욱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특히 이번 사태에서도 9.11테러 때와 다름없이 시민들이 봉사정신과 질서의식을 잘 발휘, 별다른 사건 사고가 안 났다는 사실은 미국의 저력을 재확인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도 인내를 가지고 질서를 지키며 서로 도와 난관
을 해결하면 훨씬 극복이 빠르고 견딜만하다는 사실을 다시 배우는 기회도 되었다.
’위기는 곧 기회’ 라고 위기 속에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고 일상생활에 대한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사고는 보이지 않게 얻은 교훈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솔직히 6.25나 9.11사태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한 그런 고통의 순간은 다시 없었으면 한다. 이번 비상 때 당신은 무얼 하고 있었으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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