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선전… 신이 난 아랍
”최근 몇 년, 아니 몇 십년 동안 아랍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이처럼 높았던 때는 없었다.” 암만 시내 요르단 국립대에서 만난 함디 알 힌디(21)는 전쟁에 대한 느낌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결국에는 미국이 이길 것이다. 그러나 아랍인의 마음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후세인은 제거되든 안되든 이미 아랍의 영웅이 됐다.”
전쟁 1주일째를 맞는 요르단 암만 거리는 이라크가 벌이는 ‘대미성전’ 에 고무된 시민들의 열광과 흥분 그리고 미국에 대한 분노에 휩싸여 있다. 택시 운전사, 시내 중심 하시미야 광장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팔레스타인들, 대학생, 심지어 이곳 아랍 취재진까지 이번 전쟁은 어느새 미국과 이라크간 전쟁이 아니라 아랍의 자존심이 걸린 ‘민족주의’ 전쟁이 됐다.
개전 직전만 해도 1991년 걸프전처럼 맥없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뜻밖의 전황소식에 “이라크가 잃어버린 자존심을 되찾아줬다” 며 당장 이라크로 달려가지 못하는 것을 못내 안타까워 했다.
암만 시내에서 식당을 하는 베다 알수히비(35)는 “후세인은 미국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사람도, 이라크 정권이 얘기하는 것처럼 좋은 사람은 아니다” 면서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미국에 맞서는 아랍 지도자는 후세인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가 이라크전에 대동단결해야 하는 이유다.”
이라크전에 동참하려는 아랍민족의 의지는 행동으로도 현실화하고 있다. 16일 이후 이라크전에 동참하기 위해 요르단에서 육로국경을 통해 이라크로 되돌아간 이라크인은 6,000여명에 이르고 있다. 전쟁을 피해 탈출하는 이라크 난민은 아직 한 사람도 없는데 반해 오히려 이라크로의 대규모 역류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데 대해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조차 당혹해 하는 표정이다.
튀니지에서는 노조에서 파견한 자원군이 이미 이라크로 진입했고, 레바논ㆍ알제리의 이라크 대사관 앞은 이라크 입국비자를 받으려는 젊은이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서는 TV를 통한 100만 달러 모금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리비아 주재 쿠웨이트 대사관은 미군에 협력하는 쿠웨이트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쿠웨이트 국기를 내리고 이라크기를 올리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아랍인들의 노도와 같은 전쟁열기에는 카타르의 아랍어 위성방송 ‘알 자지라’ 를 비롯, UAE의 mbc(middleeast broadcasting center), 알 아라비야, 아부다비 TV 등 아랍권 매체의 독자적인 전황보도가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이 방송들은 CNN 등 서방매체가 확인되지 않은 미군의 승전보를 전하는 데 맞서 전투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현지 특파원을 통해 전달해 반미 성전무드를 고조시키고 있다.
특히 이라크 정부로부터 유일하게 무제한적인 현장 접근권을 보장 받은 알 자지라는 미군폭격으로 한쪽 다리가 잘려나간 어린이, 시커멓게 그을린 시체, 머리가 깨진 민간인 사망자들의 처참한 모습을 가감 없이 방영, 아랍인들의 충격과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CNN 등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화면이라는 이유로 이런 충격적 장면을 방영하지 않고 있으나 이미 CNN을 믿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아랍권에서는 찾기 힘들다.
mbc TV의 아베르 알_자벤(27ㆍ여) 암만 특파원은 “1주일 가까이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쿠웨이트 접경 움 카스르 항구를 개전 수시간 만에 점령했다고 하는 서방보도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라며 “의도성이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 ”이라고 말했다.
암만(요르단)=황유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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