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대왕의 초상화를 그리기로 되어 있던 화가가 고민에 빠졌었다고 한다. 왕의 이마에 흉터가 있었는데, 그것을 그대로 그리자니 왕의 존엄성에 누를 끼칠 것 같고, 없는 것처럼 그리자니 진실을 외면하는 것 같아서 고민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화가는 무릎을 치고 "아! 이런 그림을 그리면 되겠군!" 하며 기뻐했단다. 화가가 그린 알렉산더 대왕의 초상화는 왕이 산책을 하며 흉터 있는 자리를 손으로 가리면서 휴식하는 포즈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왕의 이마의 흉터를 자연스럽게 가리면서도 초상화의 진실성에 문제가 되지 않는 훌륭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지난해를 돌아보니 나는 내 허물은 꼭꼭 덮어 감추느라 바빴고, 아이들과 남편의 허물은 빠뜨리지 않고 지적하기에 바빴고, 이웃의 허물을 캐내는 남의 소리에 쓸데없이 귀 기울이며 맞장구 치느라 바빴던 것 같다.
어쩌면 우리도 왕의 허물을 덮어주는 일은 잘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게 돌아올지도 모를 화를 생각해서라도.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이웃의 허물은 어떤가? 이상하게도 우리는 ‘사랑’이라는 미명으로 막상 사랑으로 덮어주어야 할 사람들의 허물에는 확대경을 대고 보며 일일이 지적한다. 이런 공치사까지 덧붙여 가며-"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다" "내가 아니면 누가 이런 소리 해주겠어."
이해인 수녀의 강연 테입에서 들은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어렸을 적에 친척집에 가서 어머니한테 심하게 꾸중을 들은 것이 지금까지 상처로 남아있다고 했다. 좋은 날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을 안 한다고 심한 꾸중을 들었다는 것이다. 듣기 좋은 소리로 타이를 수도 있는 것을 그때 왜 그러셨느냐고 얼마 전에 어머니에게 여쭈었더니, 어머니께서는 기억이 안 난다고 하셨단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이 에피소드를 내가 잊지 못하는 것은 아마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어렸을 적에 손님들한테 인사를 제대로 안 한다고 꾸중을 많이 들었다. 병적으로 부끄러움을 타던 나는 낯선 사람에게는 인사를 하는 것조차도 부끄러웠던 것인데, 그것을 버릇이 없어 그렇다고 손님들 앞에서 꾸중을 주시곤 하는 것이었다.
그때 그 무안하고 창피했던 기억이 지금도 안 잊혀진다. 아마 내 어머니도 지금 여쭈어보면 "내가 그랬니?" 하고 웃어넘기실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도 가끔 저희들이 어렸을 적에 엄마한테 ‘당한’ 억울한 에피소드를 얘기하곤 한다. 엄마인 나의 반응은 ‘…내가 언제?…’이다.
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에 천냥 빚 갚는다" 했고, 친절한 말에 "비지 사러 갔다 두부 사온다"라고 했는데 우리는 왜 부드러운 말 쓰는데 인색한 걸까? 부드러운 말은 아직도 공짜인데…
올해만은 야박한 말로 내치고 비판하기보다는 부드러운 말로 덮어주고 껴안아주며 살도록 애쓰려고 한다. 특히 가까이 있는 이들의 허물과 실수를. 그들을 사랑하니까. 사랑은 작은 몸짓에서 비롯하니까. 그걸 잊지 않기 위해 안치환의 노래 ‘사랑하려네’를 흥얼거리며 살려고 한다:
"저 하늘처럼 푸른빛으로/우리네 때묻은 마음속을 칠할 수 있다면/해맑은 저 아이의 평화로운 눈빛처럼/우리네 거짓된 시선들이 맑아질 수 있다면 … 작은 가슴을 가득 열고서/사랑하려네,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을/껴안을 것이 너무 많아 사랑하려네/사랑하려네, 내 주위의 모든 아픔을/이 하늘아래 사는 동안 사랑하려네”
쉽지 않은 세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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